금융감독원이 채권형 랩·특정금전신탁(신탁) 과정에서 위법 사항이 발견된 증권사들을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으로 채권형 랩·신탁에서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하자, 일부 증권사가 ‘채권 돌려막기’로 고객의 투자 손실을 보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국민일보 5월 23일자 1·3면 참조).
채권형 랩·신탁 가입 고객은 단기 여유자금 운용을 위해 가입한다. 그러나 일부 증권사는 수익률 달성을 위해 만기가 1~3년으로 길고 거래량이 적은 장기 기업어음(CP) 등을 편입·운용했다.
또 운용·환매 과정에서 증권사는 연체·교체거래로 고객 손실을 보전했다. 증권사는 운용과정에서 1:1 계약으로 투자목적과 자금 수요에 맞는 자산을 선정·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유동성이 낮고 만기가 긴 자산을 지속해 보유하다가 계약만기 시점에 운용 중인 다른 계좌에 장부가로 매각해 환매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금감원 조사결과 확인됐다.
환매 과정에서 증권사는 랩·신탁 계약 만기 시 편입자산을 시장 매각해 환매 대금을 지급하거나 만기연장·계약해지 반환을 해야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는 고객 계좌 간 연계·교체거래로 만기가 도래한 고객의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이전하거나 증권사 고유자금으로 고객자산을 고가 매입했다.
연계·교체거래란 계약 만기가 도래한 A고객 계좌에 편입한 CP를 다른 증권사에 고가로 매도한 뒤 해당 증권사에서 만기가 유사한 다른 CP를 B고객 계좌로 매수하는 방식이다. B고객 계좌의 만기가 도래하면 앞서 실행한 방식으로 목표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이다. 증권사 고유자금 활용은 고유자산으로 랩·신탁에 편입된 CP를 고가로 매입하는 방식이며 대상 고객은 대기업·투자자가 대부분이라고 금감원은 전했다.
금감원은 이 같은 영업 관행이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을 훼손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라면 합리적인 투자판단에 따라 이익과 손실을 향유해야 하는데, 실적배당상품인 랩·신탁을 확정금리형 상품인 것처럼 운영하고 고유자산을 활용해 손실을 보전한 행위가 해당 원칙의 근간을 훼손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 내부통제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금감원은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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