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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현피

고세욱 논설위원


현피(현P)는 ‘현실+상대 캐릭터를 없애는 PK(Player Kill)’의 준말로 온라인에서 다툰 뒤 현실 공간에서 실제 싸우는 것을 말한다. 1998년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게임 리니지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 현피 용어가 국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게 1999년이다. 2006년, 2008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 게시판에서 언쟁을 벌이던 고교생들이 지하철역 앞에서 현피를 떴다. 동호회원들이 둘러서서 이를 지켜봤다. 이처럼 현피는 처음엔 청소년들의 객기로 취급됐다.

온라인 산업 확산으로 현실과 가상을 혼돈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현피 심각성이 부각됐다. 문자로 간섭했다는 이유로, 또는 인터넷 토론방에서 이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논쟁을 벌인 상대방을 찾아가 살해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 커뮤니티가 2011년 설문조사에서 ‘애인이 인터넷에서 안 했으면 하는 것’이란 질문에 현피가 야동 감상, 악플, 신상털기를 제치고 5위에 올랐다. 모 정치인은 커뮤니티 회원들과의 난상토론을 ‘성탄맞이 현피’ 행사로 포장해 용어 사용을 두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조롱과 경계의 대상이던 현피에 세계 최고 부자들이 참여하겠다고 한다. 세계 부자 1위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트위터 최고경영자(CEO)와 9위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주인공이다. 머스크가 최근 트위터 대항마로 출시될 메타의 ‘스레드’에 대한 질문에 “무서워 죽겠다”고 빈정댔다. “저커버그가 주짓수를 하는데 조심하라”고 하자 “철창 싸움 준비가 됐다”고 답했다. 머스크 특유의 냉소 화법인데 저커버그가 직접 “(싸울) 위치 보내라”고 메시지를 날리며 판이 커졌다. 머스크의 답은 “(종합격투기 UFC 장소인) 라스베이거스 옥타곤”이었다.

실제 대결이 이뤄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스레드는 이미 엄청난 인지도를 쌓았고 머스크는 청년들의 환호를 이끄는 데 성공했다. 현피 시도가 남는 장사였다.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빅테크 수장들의 언쟁이 유쾌하면서 기발하다는 생각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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