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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야망을 품은 용병, 프리고진

태원준 논설위원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쿠데타에 세계가 놀랐지만, 그의 용병 비즈니스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이미 작년 9월 26일 벌어졌다. 레스토랑 등 정식 사업체 직함만 사용하던 그가 성명을 내고 바그너 용병의 창립자임을 처음 인정했다. 2014년 등장한 이 러시아 용병기업은 ‘바그너’란 가명을 쓴 초대 지휘관(드미트리 우트킨)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영국 기자가 자신과 바그너의 연관성을 보도하자 명예훼손 소송까지 냈을 만큼 8년간 철저히 음지에서 푸틴의 야욕에 부응하던 프리고진이 돌연 실체를 드러내며 양지로 나온 것이다.

당시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패퇴하던 때였다. 그는 교도소를 다니며 공개적으로 용병을 모집했다. “신은 너희를 여기서 관에 실려 나가게 하겠지만, 나는 걸어서 나가게 해주겠다.” 5만명까지 세를 불린 바그너가 정규군을 뛰어넘는 성과를 올리자 그는 얼굴에 이어 목소리를 드러냈다. 텔레그램에서 민감한 전황을 연일 공개했는데, 그 거침없는 발언을 블로거들이 앞다퉈 전파하면서 러시아의 ‘대표적’ 전쟁 뉴스 채널이 됐다.

그가 발신한 메시지는 세 가지였다. ①러시아군 수뇌부의 무능 ②그로 인한 러시아 청년들의 무의미한 죽음 ③바그너 전사들의 애국적 헌신. 아마 푸틴은 이 채널의 타깃 시청자가 자기라고 여겼을 것이다. 부하들을 서로 견제하게 하는(디바이드 앤드 룰) 그의 통치 전략에 ①이 정확히 부합해 보였다. 하지만 엊그제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로 총구를 돌리면서 비로소 확인됐다. 그의 진짜 메시지는 ②와 ③이었고, 채널의 타깃은 러시아 대중이었다. 용병이 장악한 도시에서 시민들이 “바그너”를 연호했고, 모스크바 목전까지 저항 없이 진격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전쟁 내러티브 주도권 싸움에서 프리고진은 관영 매체를 거느린 푸틴에게 완승했다. 회군했으니 실패한 쿠데타일까? 이 쿠데타의 시작은 작년 9월 26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푸틴의 권력을 뒤흔든 그는 이제 벨라루스로 가서 기다릴 것이다. 조만간 푸틴이 사라질 날을.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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