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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대형병원 수도권 분원 경쟁을 보는 두 시선


지방 환자들의 서울 큰 병원행은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본격화됐다. 서울∼대전이 1시간, 서울∼부산이 2시간대로 단축되면서 대형병원 환자 쏠림은 전국적 상황이 됐다. 빅5를 비롯한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은 각지에서 몰려든 환자로 북적댄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형병원이 최근 몇 년 새 경기와 인천 지역의 분원 설립 경쟁을 벌이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계획을 명확히 밝힌 곳만 8개 대학병원으로, 10개 분원의 착공에 들어갔거나 준비 중이다.

가장 핫한 지역은 인천이다. 세브란스병원은 2026년 말까지 송도에 800병상, 서울아산병원은 2027년 완공 목표로 청라에 800병상 분원을 짓고 있다. 행정구역상 인천은 아니지만 송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닿는 경기 시흥에는 800병상의 서울대배곧병원이 들어선다. 고대의료원(과천·남양주)과 가천대길병원(위례 신도시), 인하대병원(김포), 아주대병원(평택·파주), 경희의료원(하남) 등도 500~800병상 분원 계획을 세우고 지방자치단체와 조율 중이다. 이들 기관이 대략 완공 목표로 잡은 2028년 이후 수도권에는 6000~7000병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도권에 대형병원이 이미 즐비한 상황에서 계속 분원 설립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기존 시설 노후화와 리모델링 한계, ICT 융합 등 미래 의료환경 대비를 내세운다. 실제 새 병원을 만들면서 기존 병원에선 할 수 없었던 부분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이나 디지털화 등을 진료 현장에 새롭게 적용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분원이 만들어지면 굳이 서울에 오지 않아도 비슷한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민에게 분명 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대형병원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순 없다. 병상 확보로 덩치를 키운 대형병원이 지방 환자와 의사를 깔때기처럼 빨아들여 지금도 열악한 비수도권 지역 의료의 몰락과 의료전달체계(경증질환과 고혈압·당뇨 진료는 1차 동네 의원, 간단한 수술·시술은 2차 지역 병원, 중증·응급 및 희귀난치질환 치료는 3차 상급종합병원)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가 크다. 깨끗하고 좋은 시설에서 치료받고 싶은 지방 환자들은 수도권으로 더 몰릴 게 뻔하다. 의사, 간호사 등도 이름값 하는 의료기관으로 쏠리면서 지역 중소병원의 인력난은 가중될 것이다.

최근 설립 83년 만에 폐원 위기를 맞은 서울백병원이 중소병원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서울 중심지에 위치하지만 병상 수 200개가 채 안 되는 이 병원은 주변 대형병원과 규모의 경쟁에서 밀려 수년간 엄청난 적자를 면치 못하고 곧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대형병원의 덩치 경쟁 한복판에서 서울보다 여건이 열악한 다른 지역 중소병원은 더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이들 대형병원이 중증·희귀질환 치료라는 본분을 잊고 경증환자 진료나 과잉 진료 같은 과도한 경쟁을 벌인다면 지역 내 의원이나 중소병원은 초토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1·2차 의료의 고사를 초래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키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익 보전을 위해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비급여 진료를 마구 늘릴 수 있어서다. 비급여 진료는 병원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대형병원의 무한 증설 경쟁은 병상 규제에 그간 손놓은 정부 탓이 크다. 2019년 관련 의료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코로나19를 핑계로 미적대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수도권 분원 경쟁의 후폭풍이 가시화되기 전에 정부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적절한 병상 수급 및 과도한 경쟁 규제 방안, 의료전달체계의 명확한 확립 등 구체적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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