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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검토” 기후소송 판례는 아직 [이슈&탐사]

미국 하와이주 대법원이 “우리 아이들과 미래세대의 생명이 위태롭다”며 나무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던 바이오매스 발전소의 사업을 중단시켰던 지난달 13일, 한국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청소년들이 “이제는 판결의 시간”이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이날은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청소년의 환경권, 생명권 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헌법소원을 낸 지 3년을 맞은 날이었다. 2020년 18세였지만 이제 성인이 된 김서경씨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심층적으로 검토 중”

이들과 비슷한 시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소송을 낸 독일 청소년들은 2021년 기념비적 판례로 회자되는 기후보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얻어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기후변화가 과학적인 사실로 입증됐다는 내용, 해외 법원·헌재의 경향 등을 정리한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해 왔다. 헌재로부터는 1년에 한 번씩 ‘알림’을 받았다. 헌재는 소송 1년이 된 2021년 3월 13일 “국내외 연구자료 수집 및 분석 중”, 2년이 된 지난해 3월 13일 “쟁점이 많고 사안이 복잡해 심층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개변론이 개최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청소년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를 중심으로 국제적 동향을 묶은 의견서를 제출하려 계획하고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측은 2020년 10월 헌재에 의견서를 냈다. 청소년들이 온실가스 감축 국가목표 설정·관리를 정부에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청소년들이 국가의 위법을 판단했던 네덜란드 대법원과 우르헨다 대법원의 판결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는 “외국 법원의 사례를 국내 사안에 적용하는 것에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했고, “저감 목표치를 달성치 못하거나 수정해도 그 자체로 위법하다 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대통령 측은 “미래 야기될 수 있는 기후위기 상황을 이유로 생명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도 했다. 기후위기가 현재도 미래세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해외 판결들과는 다른 시각이다.

청소년들은 헌재의 ‘심층 검토’를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다만 다른 시각도 있다. 박시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헌재가 기후변화 소송의 무게감을 알고 있다는 해석이다. 헌재는 그 사이 심판 청구의 자격 문제를 들어 소송을 각하하거나, 미래세대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는 논리를 구성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헌재는 다른 기후변화 소송에 대해서는 소송 제기 1개월 내에 각하한 사례들이 있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어려운 이슈에 대해서는 3년여의 심리를 ‘긴 기간’이라고 얼른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지만 소송 제기와 헌재의 검토 사실만으로도 법학계의 논문에 자주 다뤄진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른 세계 사법부의 변화 속에서, 외신들도 헌재의 탄소중립법 위헌 판단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외신들은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2030년 이후의 감축목표도 설정해 미래세대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의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사실까지 전하고 있다. ‘플랜 1.5’ 윤세종 변호사는 “기후변화 소송 판결이 ‘전향적 판결’이라 소개되기도 하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다. 과학이 규명한 객관적 사실과 그에 따른 법적 판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탄소중립법 위헌확인 헌법소원 등 국내 기후변화 소송들을 이끌고 있는 ‘플랜1.5’의 박지혜(오른쪽)‧윤세종 변호사. 둘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법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러 기후변화 소송이 진행됐다. 본격적으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이 거론된 첫 국내 기후변화 소송 사례로는 2018년 제기된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사업계획 승인처분취소 소송이 꼽힌다. 강원 삼척시와 동해시 주민 등 785명이 “국가 상위계획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측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친환경적 발전소”라고 맞섰다. 서울행정법원은 “발전소가 건설된다 하더라도 2030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고 이 판단은 2심을 거쳐 확정됐다. 소송을 대리했던 박지혜 변호사는 정부의 ‘친환경’ 주장에 대해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서는 깨끗하다’는 주장을 한 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 사례는 새만금 지역 주민 등 1308명이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낸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처분 취소소송이다. 현재 서울행정법원이 심리 중이다. 주민들은 탄소를 흡수‧저장하는 수라갯벌을 없애고 거대한 탄소 배출원인 공항을 짓는 계획이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권은 국가의 정책 수립과 입법 행위를 기속하는 직접적인 규범이라며, 재판부가 수라갯벌을 현장검증해 봐야 한다는 태도다. 정부 측은 지난 3월 변론에 나와 “수라갯벌은 갯벌이라 평가하기 힘들다”고 했다.

태양광 발전 협동조합들이 2021년 10월 “바이오매스 사업에 이중 혜택을 주는 정책이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지난 18일 각하됐다. 5차례의 변론 끝에 법원은 원고 자격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원고들은 바이오매스가 산림파괴를 전제하는 ‘가짜 재생에너지’로서 기후대응에 역행한다고 강변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미 있는 법원의 판단은 들을 수가 없다.

한 원로 법조인은 “기후변화 소송은 결국 환경과 산업, 당위와 현실간의 어려운 문제”라며 “사법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협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가진 현행 법리나 판례는 기후위기를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며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상상력과 창조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법부가 권리보호 측면에서 응당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학계 시민계 언론계 전반이 함께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국제 공동체가 고민해온 부분들은 자명하다”고 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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