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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동백꽃 단상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선운사 동백꽃을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지난 금요일, 전북 고창의 하늘은 전날 비를 몰고 왔던 구름이 남아 흐렸다. 바람도 차갑고 매서웠다. 1986년 발표된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를 들으며 다른 곳의 동백꽃보다 선운사 동백꽃을 꼭 봐야겠다고 오래전 마음먹은 일을 이제야 실행했다. 주차장에서 선운산 생태숲을 지나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은 흩어지는 벚꽃잎으로 가득했고, 대웅전 뒤 동백꽃은 나무와 땅에 가득 피어 있었다. 동백나무 숲에 있으니 동박새라고 억지로 추정한 새들의 지저귐은 요란했다. 흩날리는 흰 벚꽃잎과 뚝 떨어진 빨간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을 노래한 시인들에게 동화돼 있지도 않은 시상(詩想)이 마구 떠오르리라는 상상은 그저 기대였을 뿐이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김용택의 ‘선운사 동백꽃’을 다시 찾아보며 한동안 동백나무 숲 앞에 서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벚꽃과 동백꽃을 사무라이의 꽃이라고도 한다는 얘기와 서정주의 친일행적이 떠올랐다. 시상을 찾지 못한 핑계로 세태를 탓하기로 했다.

선비정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듯 사무라이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일본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사무라이를 한자로는 시(侍)로 쓴다. 시종이나 내시에서의 시와 같은 뜻이다. 영주, 군주를 호위하는 계층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의(義) 용(勇) 인(仁) 예(禮) 명예(名譽) 극기(克己) 비장한 죽음으로 정리된다. 근대 일본의 농업 교수이자 국제정치가인 니토베 이나조가 미국 유학 중이던 1899년 일본을 알리고자 영어로 썼던 책 ‘무사도: 일본의 정신’에서 정의했다. 하지만 실제 사무라이는 힘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만 의리를 지켰다. 부와 명예 등이 주군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적을 만나면 주군을 배신하고 투항하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기에 상대가 방심할 때 기습하는 것을 선호했다. 전투에서 지거나 주군에게 밉보여 쫓겨나더라도 칼을 놓지 않고 떠돌이로 살며 용병, 청부 살인, 깡패 짓을 일삼았다. 이유 없이 평민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충성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다. 수치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수치를 알기 전에 스스로 단죄해 할복했고, 끝까지 잘못을 실토하지 않아 참수당했다’ 등은 미화된 이미지로 보인다. 그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할복을 화려하게 피었다가 꽃 이파리를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으로, 참수를 꽃째 떨어지는 동백꽃으로 포장했다. 사무라이 정신이 정치인의 논리로 자리잡으면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게 미덕이 돼 버린 듯 보인다. 우리 안에도 선비정신보다 ‘포장된’ 사무라이 정신에 가득 찬 인사들이 많다. 동백꽃은 차가운 눈에 덮인 땅일지라도 과감히 떨어진다. 시인들은 나무에 피어 있는 동백꽃보다 땅에 떨어진 동백꽃에 주목했다. 가장 아름다울 때 자신을 버리지만 그대로 다시 땅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 싶다. 구차하게 매달리기를 포기하고 때를 알아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아름답고 명예로워 보인다.

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마지막에 피는 선운사의 동백꽃도 그새 다 졌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다시 동백꽃을 보러 가려고 한다. 흰 눈에 덮여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이번에는 제주부터 여수 오동도, 부산 동백섬, 순천, 강진, 서천 등도 돌아보고 싶다. 어지러운 세태도 정리돼 시상이 떠오르면 좋겠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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