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는 대한민국 국가(國歌)다. 그 자체로 민족의 얼이자 살아있는 역사다.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대한민국 국가, 애국가’를 주제로 엄숙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발표자였던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김형석(68) 이사장은 “지나온 5년 동안의 사연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면서 “당시 국회는 정치인, 시민단체가 합세해 애국가 폐기를 주장하는 선전장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역사적 인물’인 안익태(安益泰)는 ‘친일’을 넘어서 ‘친나치’로 호도되고 있다고도 했다. 아무런 검증도 없이 오명이 덧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역사학자이면서 목사이기도 한 김 이사장은 총신대 역사학 교수, 고신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독립운동가, 군가, 망향가였던 애국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4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재단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새롭게 발굴한 자료들을 근거로 극일 평화주의자 안익태의 모습을 소개했다. 김 이사장은 “대한제국 말기인 1896년 독립협회는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부르는 국민의례운동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독립신문에는 32편의 애국가가 소개됐으며 제목이 애국가인 것만 11편이었다. 이들에게 애국가는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 각기 개인의 서정적 목소리를 담은 노래였다고 김 이사장은 전했다.
김 이사장 말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애국가는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의 주제곡이었다. 당시 간행된 ‘조선독립신문’ 제2호에는 ‘13일 간도 용정시에 사는 조선 민족 일동은 독립선언을 축하하기 위해 4만명 이상이 모였는데, 10년 만에 처음 듣게 된 애국가 소리에 신(神)께서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셨다’는 기사가 실렸다.
애국가는 이처럼 독립만세운동의 주제가이자, 광복군이 전선에서 부르던 군가였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눈물짓던 해외동포들의 망향가이기도 했다. 또 국제 경기가 열릴 때면 온 국민이 승리를 열망하며 부르던 승전가였다.
세미나를 주최한 최재형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지나온 120여년간 애국가만큼 대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일깨워 준 것은 없었다”면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애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현대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애국가, 1941년 2월부터 사용
애국가의 내력을 살펴보면 3·1운동 때 부른 애국가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곡조가 아니다. 당시 가락은 영국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맞춘 ‘구 애국가’다. 그런데 1935년 12월 28일 안익태가 미국 시카고 한인교회에서 발표한 신작 애국가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는 충칭 임시정부에 기존 올드랭사인 곡조 애국가 대신 안익태의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임시정부 국무회의는 이 요청을 허가키로 결의하고 1941년 2월 1일자 ‘공보 제69호’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고시했다. 따라서 제33회 의정원 회의부터 공식적으로 불리던 애국가는 2년 뒤 광복군 지대까지 보급되면서 국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한편 임시정부는 해방이 된 후에도 신익희 내무부장 명의로 새롭게 건국할 국가의 국호는 대한민국, 국기는 태극기, 국가는 애국가를 사용할 것을 발표했다.
마침내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개원식은 애국가 봉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했다.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애국가를 불렀다. 이때부터 모든 국가 행사에는 반드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기독교인이 적극 보급했던 애국가
그런데 왜 일부 사람들은 애국가를 부정하는 것일까. 2012년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로 법적 분쟁이 일었을 때, 이석기 전 의원은 통진당이 당 행사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그냥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 노래 중 하나일 뿐이다’라며 국가로서 애국가의 상징성을 부정했다.
역사적으로는 1947년 월북 음악가인 박영근도 이같이 주장하고 비판하면서 애국가를 부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안익태씨 작곡 애국가는 그 리듬이나 멜로디가 ‘야소(耶蘇·예수) 찬미가’ 조로 된 것이어서 시위 행렬 시 애국 부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꼭 마치 전도부인들이 겨울밤에 부르고 다니는 처량한 소리 같은 것임을 들어 알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당시 애국가는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의 주도로 전파됐다. 반면 좌파 세력은 김순남의 ‘해방의 노래’와 ‘인민 항쟁가’를 불렀다. 그런 와중에 미 군정에 의해 좌익 음악인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이들이 월북하면서 애국가를 둘러싼 갈등은 일단락됐다.
애국가는 이후 제5공화국 시절 새 국가 제정론이 다시 고개를 들며 이슈가 됐다. 하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애국가는 지난날 일제의 탄압과 공산주의자와의 투쟁에서 우리의 얼을 지키며 불러온 애환이 담긴 민족의 국가”라고 지적하며 공론화해 이를 철회시켰다. 한동안 잠잠하던 애국가 논쟁은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 ‘친일 적폐청산’이라는 이유로 다시금 ‘애국가 폐기 운동’으로 나타났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배경
왜 자꾸 애국가를 바꾸자고 하는 것일까.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애국가는 찬송가’라는 주장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07년 윤치호가 펴낸 ‘찬미가’ 14장인 애국가(Patriotic Hymn)의 가사는 지금의 애국가 가사와 같다. 차이점이라면 ‘하나님이 보호하사’가 ‘하느님이 보우하사’로 바뀐 것뿐이다. 작사자 윤치호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다. 어떤 이들은 안창호 최병헌 김인식 등이 애국가 작사자라고 주장하지만 그들 역시 한국 교회사에서 유명한 기독교인들이다.
덧붙여 기억해야 할 사실은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하게 된 경위와 신앙적인 의미다.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는 6살 때부터 평양 산정현교회를 다니며 찬송가를 배웠다. 종로보통학교 시절에는 바이올린과 코넷을 자유자재로 연주한 음악 신동이었다.
그런 그가 1918년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자 교장이던 모우리(E M Mowry) 선교사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심지어 안익태가 시위 관련자로 처벌을 받고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를 통해 일본 유학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안익태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모우리 선교사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고 자랐다.
그 후 일본 국립동경고등음악원을 졸업하고 미국 신시내티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안익태는 1930년 9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상항(桑港)한인교회 황사선 목사를 찾아갔다. 그날 밤 안익태는 20여 명의 교인 앞에서 연주회를 가졌는데, 강대상 위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교인들과 어울려 난생처음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감격을 맛보았다. 그때 부른 애국가는 ‘올드랭 사인’ 곡조였다. 그는 애국가가 외국곡이라는 사실과, 그것도 술집에서 부르는 노래라는데 수치심을 느껴 감격과 동시에 형언키 어려운 비감에 빠졌다. 이것이 그가 애국가를 작곡하게 된 배경이다.
하나님의 계시로 후렴부 완성
이날 이후 안익태는 힘든 유학 생활에도 애국가 작곡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1935년 11월 극적으로 애국가를 완성했는데 ‘신한민보’에 그날의 감격을 이렇게 기고했다. “과거 5년간 간절한 마음으로 작곡에 매진하여 약 2년 전에 처음 절은 마쳤습니다만 후렴은 완성하지 못하고 지나던 중에, 11월 하순 어느 이른 아침, 실로 하나님의 계시로 후렴부를 완성하였습니다.”
이처럼 애국가는 구한 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독교인들의 불타는 애국적 신앙의 표현이었다. 김 목사는 “작곡가의 정치성을 놓고 국가의 자격을 따지자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애국가는 가사나 곡조 어디에도 친일적 요소는 찾을 수 없고 말 그대로 애국가다. 애국가를 부정하는 건 한국교회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익태는 1942년 9월 18일 대형 일장기와 만주국 국기 아래 ‘만주국 환상곡’을 초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60년 2월부터 3월까지 그는 일본 교토 오사카 고베 등지를 순회하며 ‘한국환상곡(코리아 판타지)’을 공연했다.
김 이사장은 “일본인 합창단원이 한국말로 애국가를 합창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식민지 조선인 안익태의 입장이 반전돼 일본인들이 한국말로 애국가를 합창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그야말로 역사의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말처럼 애국가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애국적 신앙 표현이었다. 신앙 위기를 토로하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애국가를 사랑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이유가 아닐까.
글·사진=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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