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업체에 금융상품 판매 중개업을 허용하는 정부 조치로 금융시장까지 플랫폼에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압도적 이용자 수를 내세워 ‘페이 서비스’ 등으로 산업계 공룡이 된 빅테크 업체의 덩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23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 규제 혁신으로 온라인 플랫폼 업체에 허용된 금융 중개업 범위는 예금과 보험 상품 등이다. 제1 금융권뿐 아니라 저축은행, 신협 등 예·적금 상품을 플랫폼에서 비교·추천할 수 있게 됐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과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 상품에 대한 중개업도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시장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금융위는 빅테크·핀테크 기업뿐 아니라 금융회사도 여러 금융사의 예금상품을 비교·추천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시범운용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빅테크 기업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규제 완화 범위를 넓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 우월적 지위를 이미 갖춘 빅테크 업체들과 금융사 간 경쟁은 불공정하다는 지적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이나 보험사는 빅테크 업체에 금융상품을 납품하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번 이뤄진 규제 완화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워 빅테크 업체의 금융산업 영역은 앞으로 더 확장할 전망이다. 금융위는 6개월가량 온라인 플랫폼이 예금·보험 상품 중개업을 시범운영토록 한 뒤 펀드상품에 대한 중개업을 허용할지도 검토할 예정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금융상품 추천 알고리즘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을지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입 조건이나 우대 내용 등이 복잡한 금융상품 추천이 단순 판매 가격 비교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추천 알고리즘과 관련해 코스콤 등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 공정성에 대한 검증을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내부의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보험대리점 등이 참여하는 한국보험대리점협회는 전날 온라인 플랫폼의 보험대리점 허용을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등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는 ‘플랫폼 금융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은행권 규제도 대폭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국민연금 가입 내역과 건강보험 납입 내역, 세금·공과금 고지서 등을 통합 관리하는 서비스를 허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은행이 통합 앱을 통해 보험과 카드, 증권 등 계열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은행 계열사 간 고객정보 공유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객 동의를 받은 경우 정보 활용이 자유로운 빅테크사 등 다른 업권과의 규제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회사의 ‘헬스케어 서비스’ 업무 영역도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건강통계 분석과 제공 등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보험 상담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통계 자료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카드사가 금융상품 추천과 자금 관리 등을 아우르는 금융 플랫폼 사업을 할 수 있는 지원 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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