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북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맹비난하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핵을 ‘국체(국가의 근간)’라고 표현하며 비핵화의 길로 나서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윤 대통령을 향해 도를 넘는 막말까지 쏟아낸 점에 비춰 상당 기간 비핵화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9일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담대한 구상’에 대해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절대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이라며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구상이라 생각하니 아직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명박정부 당시의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또 지난 17일 순항미사일 2발의 발사장소가 한국 군 당국의 발표와 다른 곳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참으로 안됐지만 우리의 무기시험 발사지점은 남조선 당국이 서툴고 입빠르게 발표한 온천 일대가 아니라 평안남도 안주시의 금성다리였음을 밝힌다”고 했다. 또 “제원과 비행자리길이(비행거리)가 알려지면 남쪽이 매우 당황스럽고 겁스럽겠는데 이제 저들 국민 앞에 어떻게 변명해나갈지 정말 기대할 만한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조롱했다. 평양을 기준으로 안주시는 북쪽, 온천은 서남쪽에 있고, 두 곳은 직선거리로 90㎞ 이상 떨어져 있다.
대통령실은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북한이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무례한 언사를 이어가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을 왜곡하면서 핵개발 의사를 지속하겠다고 표명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측의 이런 태도는 스스로의 미래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재촉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그러면서도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한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며, 북한이 자중하고 심사숙고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의중을 대변하는 김 부부장이 직접 남한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면서 경색된 남북관계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최고 지도부가 직접 메시지를 내놓은 만큼 남북관계가 굉장히 얼어붙는 건 분명하다”며 “지금은 어떤 변화의 모멘텀을 찾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이 완벽한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절대 목표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대화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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