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연결고리로 한·미·일 3국의 안보전선이 공고해지고 있다. 북한은 올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해 18차례 미사일 도발에 나선 데 이어 핵실험 준비까지 마치는 등 위협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상황이다.
문재인정부는 특히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안보 부문에서 한·미·일이 뭉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꺼렸지만, 윤석열정부는 대북 공조를 명분으로 3국 안보 협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미·일 국방장관이 지난 1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2년7개월 만에 회담을 갖고 공조 회복을 과시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3국은 북한 미사일에 공동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사일 경보훈련과 탄도미사일 탐지·추적 훈련을 정례화하고,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추가적인 한·미·일 연합훈련을 위한 논의도 이어가기로 합의하면서 3국 안보 협력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한·일 간에 깊어진 감정의 골을 단기간에 메우기는 어려워 실제 전력을 동원하는 ‘연합 군사훈련’으로까지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초계기 사건’ 여전히 암초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주도하에 3각 공조가 두터워진 듯하지만, 한·일 군 당국 사이의 불신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요미우리신문은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 공동 발표문에 3국 미사일 경보훈련 정례화 방침 등이 기재된 데 대해 방위성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의 강한 의향이 결정적이었다”고 전했다. 한·일 양국이 능동적으로 나선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한·일 간 공식 회담이 없었다는 점을 거론하며 “관계 개선의 시계(視界)가 맑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샹그릴라 대화 본회의 연설에서 “일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다”고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도 “한·일 간에는 여러 현안이 남아 있다”고 여지를 뒀다.
이 장관이 언급한 ‘여러 현안’ 중 군사적 갈등 사안으로는 ‘초계기 사건’이 있다.
초계기 사건은 2018년 12월 20일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에서 표류 중인 북한 어선에 대한 수색·구조작업을 벌이던 중, 근처를 날던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사격관제용 레이더를 겨냥했다고 일본 정부가 주장하면서 촉발된 갈등이다. 국방부는 당시 사격관제 레이더를 겨냥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 위로 4차례에 걸쳐 위협적으로 저공 비행한 행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맞섰다. 양국 군 당국은 유튜브에 증거 영상까지 올리며 격렬하게 대립했다.
과거사 여파도 무시 못해
초계기 갈등이 향후 양국 군 당국 차원에서 해소되더라도 과거사 문제가 남아 있다. 과거 위안부 문제에 개입했다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후 수차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미국 측은 현재 과거사 문제에는 거리를 두며 안보 협력이라도 하자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과거사와 안보 협력은 별개로 하자는 ‘투 트랙’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반일 감정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방부가 2020 국방백서에서 그간 ‘동반자’로 표현하던 일본을 ‘이웃국가’로 격하시켰을 때 백서는 초계기 사건뿐만 아니라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독도 도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하고, 문재인정부가 다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라는 군사적 대응으로 맞섰던 탓에 일본이 한국의 투 트랙 전략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 가능성에 대해 “자위대 항공기가 우리 영공에서 훈련하고, 자위대 전함이 우리 영해에 들어와서 훈련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겠느냐”며 선을 그었다. 그는 “안보 협력과 군사훈련은 다르다”며 “일본과 군사훈련을 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이는 군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이 돼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3국의 실기동 연합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3국이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미사일 경보훈련과 탐지·추적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다.
연합군사훈련은 어렵겠지만…
결국 3국 안보 협력도 제한적 수준에서 진척을 보이지 않겠냐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초계기 사건으로 중단됐던 대잠수함·대테러훈련과 인도주의적 수색구조훈련(SAREX) 등의 재개가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현재 ‘조건부 유예’라는 애매한 상태에 놓인 지소미아가 정상화될 가능성도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가 한·일 관계 개선과 함께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되길 희망한다”며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간, 또 미국과 함께 정책을 조율하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이 실질적인 3국 연합 군사훈련을 희망하고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도 갈수록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관련 논의를 마냥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으로부터 확장 억제를 제공받는 입장에서 한·미→한·미·일→한·일 협력으로 나아가는 수순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의 전술핵무기들은 지금 우리 방어체계로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무기들은 일본까지 사정권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협력의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며 “미사일 탐지부터 시작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건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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