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때때로 재테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이 들었다는 뜻이다. 공중 나는 새들은 대부분 내일 먹을 음식을 걱정하지 않지만 인간은 누구나 저장 강박을 타고난다. 나중에 쓸모가 있든 없든 무언가 한두 가지 물건쯤은 쌓아두고 싶어 한다. 무엇을 모을 것인가는 각자 다르지만 수집 자체는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행위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질 나이가 되면 재테크에 관심이 높아진다. 아이들이 스스로 앞가림할 때가 되니 우리 부부 역시 무의식적으로 아직 길게 남은 삶이 부쩍 걱정되는 듯하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재보다 미래가 나빠지리라 생각되면 저장 욕구가 무척 심해지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곰은 폭식으로 살을 찌우고, 박새는 온갖 땅에 씨앗을 숨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죽을 날은 멀었고 할 일은 남았고 돈 쓸 일은 많은데 앞으로 수입이 줄거나 없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돈이나 부동산 등 재산을 미리 쌓으려 한다. 직장에서 은퇴하는 등 사회적 삶이 줄어들어 외로울 일이 예측되면 재테크에 열중하는 한편으로 친구나 동료나 후배한테 관대해진다. 퇴직을 앞둔 이들은 너그럽기 그지없고 동창회나 향우회는 50대부터 비로소 활발해지는 법이다. 미래가 불안하면 인간은 탐욕스러워진다. 노후를 편안히 보낼 넉넉한 재산을 쌓고 주변에 사람을 모아서 닥쳐올 가난에 대비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보다 돈이 우선하곤 한다. 우정도, 사랑도, 자애도 돈으로써 실현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맹자가 꿰뚫어 보았듯 고결한 인간은 한결같은 재산이 없어도 한결같은 마음을 지킬 수 있으나, 평범한 이들은 대부분 한결같은 재산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도 무너져내린다. 앞날이 불안한 노인들은 대개 창창한 젊은이들보다 악착같아지고, 이로 인해 예술 작품에서 자주 경멸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자본주의 발흥지인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성서의 일곱 대죄 중 탐욕을 흔히 돈주머니를 든 노인으로 그렸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623)에서 렘브란트는 한밤중에 촛불을 켜고 화려한 옷을 입은 채 비싼 안경을 끼고 온 신경을 다해서 금화를 들여다보는 노인을 탐욕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노인의 왼쪽에는 배부른 돈주머니가 놓여 있고 사방에는 회계 장부가 가득 쌓여 있다. 흔들리는 촛불로 인해 생겨난 그림자들은 노인의 불안한 마음을 반영하고, 반짝이는 금화는 재물에 사로잡힌 노인의 욕망을 상징한다. 동시대의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 역시 ‘등불에 동전을 살펴보는 노파’(1623)에서 한밤중에 안경을 끼고 돈주머니를 손에 든 채 등잔 빛에 금화를 비춰 살피는 노파를 탐욕의 얼굴로 그려냈다.
진화심리학은 몰랐으나 화가들은 나이 들면 다른 욕구가 줄어드는 대신 재물 저장 욕구가 심해진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나 예수는 저장과 축적에만 몰두하다가 진짜 가치 있는 일을 뒤로 미루는 인간의 우매함을 크게 질타한다. “탐욕에 빠져들지 않게 조심해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유해도, 재산이 생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부지런히 재물을 모아 창고에 쌓아둔 후 실컷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려는 순간, 불현듯 죽음이 그를 찾아와 모든 걸 헛수고로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은 어리석다. 물질 중심의 삶은 흔히 불안과 스트레스를 부르기에 우리 몸과 마음을 쉽게 병들게 한다.
재물을 몸 밖에 쌓는 일을 부(富)라 하고, 타인의 마음에 쌓는 일을 덕(德)이라 하고, 인생에 의미를 쌓는 일을 행복이라 한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어울리도록 지식과 경험을 쌓아 이룩하는 지혜도 있다. 유한한 인생에서 무엇을 쌓으며 살아갈지는 각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좋은 삶을 위해서라면 나이 들수록 열심히 쌓아야 하는 것은 돈이나 땅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는 덕이나 행복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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