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공간이 인식을 지배한다… 아이들은 더 그렇다

Է:2022-04-1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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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사를 마치고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전북 남원시의 덕과초등학교 입체 평면도. 덕과초 제공

산속 휴양지의 리조트처럼 생긴 위 건물(아래 사진)은 전북 남원시 덕과면에 있는 덕과초등학교입니다. 공사를 끝내고 올해 새 학기부터 학생들이 쓰고 있습니다. 사진의 가장 오른쪽이 1학년 교실입니다. 오른쪽부터 차례로 2~6학년 교실입니다. 6학년 교실 옆이 출입문이고 그 옆이 방과후 교실, 돌봄 교실, 과학실, 교직원실이 배치돼 있습니다.

덕과초등학교 전경. 이도경 기자

덕과초를 지난 13일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수업 중이었습니다. 아이들 동선은 다채로웠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어떤 아이들은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난 유리문을 열고 나갑니다. 그리고 나무 덱(deck)을 지나 미끄럼틀에 몸을 싣습니다. 미끄럼틀 끝에는 모래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래놀이터로 여러 학년이 모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슬라이딩 도어의 문을 열고 복도 쪽으로 나갑니다. 복도는 마치 아이들과 교사들이 교류하는 광장 같습니다.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다락방 같은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곳곳에 놓인 책꽂이에서 책을 뽑아 눕거나 엎드려 책을 봅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자 모래놀이터의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거슬러 올라와 다시 자리에 앉고, 광장에 나갔던 아이들도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표정만 봐도 “예전 학교보다 좋냐” 같은 질문은 불필요해 보였습니다.

지난 13일 덕과초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 받는 모습. 덕과초의 교실은 양쪽으로 트인 구조다. 유리문을 열면 모래놀이터와 운동장이, 복도문을 열고 나가면 도서관과 광장이 결합한 소통 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 이도경 기자

덕과초는 교육부의 ‘학교 공간혁신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최근까지 가장 공들인 사업이죠. 번지르르한 외관만 고치는, 교육청 시설 담당자와 교장 등 소수가 결정하는 과거의 학교 시설 공사와 다릅니다. 학생과 학부모, 일반 교사 의견을 토대로 학교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의견을 모으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학교 나름의 비전이 세워집니다.

학교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제대로 한다면 말이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합의해내는 과정인 것입니다. 학교는 일단 공부를 하는 곳이므로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정해야 합니다.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므로 휴식과 소통은 어떻게 할지 아이들 동선 계획 역시 소홀히 하기 어렵습니다.

덕과초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즉시 미끄럼틀을 타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 있습니다. 교실 문 하나만 열면 도서관과 광장이 결합된 공간에서 다른 아이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초등학교에선 운동장에 나가고 싶으면 복도를 거쳐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기도 합니다. 아주 활동적인 아이 몇몇을 빼고는 교실에 머무르길 강요하는 구조입니다. 운동장과 소통 공간에 대한 접근성 격차, 나중에 어떤 차이로 나타날까요.

학교 공간혁신 사업을 업그레이드한 게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입니다. 학교 공간혁신 사업에 저탄소·친환경 요소를 담은 ‘그린’, 마을 커뮤니티와 학교가 호흡하는 ‘복합화’, 인공지능·메타버스·가상현실 등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스마트 교실’ 개념을 추가해 새로운 학교를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환경 개선이 시급한 40년 이상 오래된 학교를 우선 적으로 손 봅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을 고려해 방역을 포함한 ‘안전’ 개념을 강화했습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역시 학교 공간혁신의 사업 방식을 따릅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학교를 만들죠. 학교 교육과정을 합의하고 이에 따라 공간 배치를 합니다. 학교를 만들 때 지역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는 건 의외로 중요한 작업입니다. 지역 특성에 따라 학교 공간은 달라져야 하니까요.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초등학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학교는 낙후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학부모들의 소득이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결손 가정 비율도 높았죠. 그래서 공교육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 학교 교사들은 학교를 설계하며 건축사에게 교실 사이즈를 키워 달라고 요구합니다. 교실 안에 학생과 1대 1 수업을 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추가해 평소 수업에서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을 배려했습니다. 수업 중에 보조 교사가 아이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을 가르쳐 줄 수 있고, 방학 기간에 기초학력에 문제가 있는 학생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학교는 지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다른 공간을 줄이더라도 교실을 크게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기초학력 저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꼭 이런 방식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학교마다 다른 접근이 가능할 겁니다.

사교육 특구의 학교에선 ‘힐링’ ‘소통’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교실 사이즈를 줄이고 학교 숲이나 광장 같은 걸 조성할 수도 있겠죠. 학교마다 학생이 필요한 공간에 대한 고민하는 것 자체가 큰 변화입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학교 구성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교도소 구조와 흡사한 천편일률적인 학교 공간은 나올 일 없습니다. 그 안에서 배우는 것도 확일화되지 않을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발표하며 “공간이 인식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선 제왕적 대통령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른 사람도 공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학생들은 어떨까요.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집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학교입니다. 조금씩 학교 공간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끄럽고 번거로우며 더딘 변화여도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새 정부에서 과거 정부의 업적이라며 되돌리지 않길 바랍니다.


이동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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