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홀로 지내는 85세 정말임(김영옥) 여사와 서울에 사는 아들 종욱(김영민). 아무 일 없어도 서로 마음이 쓰이는데, 갑자기 치매라는 불청객이 들이닥친다. 자꾸 찾아와 잔소리하는 아들에게 말임은 “나 혼자서도 괜찮으니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역정을 낸다.
구직 중인 종욱은 실질적 가장인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엄마 곁을 지킬 수도, 엄마를 서울로 모실 수도 없다. 결국,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에게 엄마를 맡기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다. 말임은 미선이 영 마뜩잖다. 아침과 점심 식사를 챙겨주고 잠시 말동무해주다 가면서 아들에게 월급을 150만원이나 받는다. 말임은 아들에게 전화해 “미선이가 집에서 돈도 훔쳐가고 반찬도 몰래 가져간다”며 화를 낸다. 말임의 말은 정말일까.
종욱 내외의 불화는 깊어간다. 종욱의 아내는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도, 안절부절못하는 종욱의 모습도, 요양보호사 월급 때문에 곧 만기인 적금을 해약해야 하는 것도 짜증이 난다. “너희 엄마가 아파도 그럴 거냐”는 종욱에게 “우리 엄만 안 그래”라고 받아친다. 설날 저녁 모두 모인 말임의 집에서 ‘옥장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모두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 누구나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이다. 박경묵 감독은 장편영화 데뷔작인 이번 영화에서 인간미 넘치는 연출로 관객에게 묵직한 고민거리를 얹어준다. 영화 속 인물들의 입장 하나하나에 나 자신을 대입해보면 결국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대사가 관객의 마음을 후벼판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미선의 말에 “난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울한 신파극이 어울릴 법한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는 건 배우들의 명연기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연극 같은 장면도 주인공들의 앙상블 덕분에 유쾌하다.
배우 김영옥은 65년 연기 인생 첫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무뚝뚝하게 툭툭 내뱉는 말투와 못마땅한 표정, 세상일을 다 아는 듯 자식을 혼내다가도 장사꾼의 말에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는 모습, 이따금 나오는 귀여운 몸짓까지 현실 속 엄마의 모습을 스크린 안에 오롯이 담아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드라마 ‘마인’ 등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해 온 박성연은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극의 전개를 책임진다.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 같은’ 요양보호사 미선은 말임의 가족을 쥐락펴락하며 관객의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말임과 미선의 관계를 보면서 진짜 가족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사랑의 불시착’ ‘부부의 세계’ 등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해 온 김영민은 엄마와 티격태격하면서 아내의 눈치를 보는 종욱의 짠한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특별 출연한 배우 이정은은 말임의 집에 방문한 보험공단 선임직원으로 짧고 굵게 등장해 김영옥과 맛깔스러운 ‘티키타카’를 선보인다. 13일 개봉.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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