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원 대상자는 이혼 후 딸을 키우고 있는 40대 가장이었습니다. 6년 전 백혈병 투병 당시 망막 수술로 인해 시각 장애까지 생기면서 의료비 부담이 커졌고, 가정 방문을 했을 때 누수로 인해 곰팡이가 심해 이사가 시급해 보였는데 부채 상환 때문에 이사 비용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었죠.”(최은지 목동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긴급 의료상황이 경제적 위기로 이어진 경우라 사례 회의에서도 통합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향후 모니터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임수진 기아대책 국내사업기획팀장)
지난 3일 서울 양천구 목동종합사회복지관 회의실에 들어서자 마스크를 쓴 채 진지하게 대화 나누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목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례 관리 부문을 맡은 최 사회복지사와 기아대책(회장 유원식) ‘희망둥지 위기가정긴급지원사업’(희망둥지)을 총괄하는 임 팀장이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의 최전선에 있는 실무자와 최전선에서 발견한 긴급지원 대상자에게 필요 자원을 공급하는 두 주체의 만남인 셈이다.
희망둥지는 기아대책이 공적 지원의 한계를 보완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급증한 위기 가정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20년 5월부터 시행한 통합지원 사업이다(국민일보 2월 22일자 33면 참조).
임 팀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진행하는 기존 지원 사업에 비해 대상 기준을 완화해 지원의 울타리를 넓힌 것, 대상 선정과 지원 절차가 오래 걸려서 위기 상황에 바로 투입하기에 한계가 있었던 점을 보완하는 것 등이 희망둥지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법정 기준으로 국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30~50% 구간에 있어야 교육 주거 의료 생계 지원이 가능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중위소득은 4인 가족 기준 512만1080원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소득인정액이 153만6324원~256만540원 범주 안에 있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희망둥지의 경우 지원 대상 기준이 중위소득 100% 이하다.
최 사회복지사는 “위기 속에서 발버둥 치다 막막해서 찾아왔는데 지원 대상 기준에 해당하지 않거나 연결할 수 있는 사업이 없어서 도움을 드릴 수 없다고 안내해야 할 때가 사회복지사로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며 “희망둥지 사업이 시행되면서 지원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이웃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지원대상자 입장에서 지원 기준의 폭이 넓어진 것보다 더 반가운 것은 통합지원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교육 주거 의료 생계비를 각각 신청하는 방식이었지만 희망둥지 시행 후부터는 사회복지사가 가정을 방문해 상담한 내용을 토대로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위기 상황을 심층 분석 하는 사례회의를 거친다.
임 팀장은 “매달 20여 가정 사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데 이 과정에서 공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사례를 찾아낸다”며 “위기를 겪는 가정이 처한 환경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고된 내용을 토대로 상황을 진단해 요청에 없었던 추가 지원을 결정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지원이 이뤄진 곳은 130가정. 그동안 지원 대상자들에게 얼마나 견고한 둥지가 만들어졌을까. 기아대책이 지원 대상자들로부터 희망둥지 사업 전반을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 긴급지원 항목 중 주거비 지원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지원 수준에 대한 만족도(1~5점) 조사에서 주거비 항목에 가장 높은 점수(4.15점)를 줬다. 교육비(4.11점)가 뒤를 이었고 생계비와 의료비 부모교육(4점) 항목은 동일한 만족도를 보였다. 최 사회복지사는 “코로나 이후 실직이 급증하면서 생계와 주거에 위기를 겪는 사례가 늘었는데 긴급 지원을 통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운 게 주효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희망의 둥지 속에서 대상자들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까. 결론적으로 경제적 조건은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원 전후의 심리 정서 변화에 대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지원을 통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1~7점)가 약간 높아졌다(전 1.43, 후 1.57)고 느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생활행복도와 우울감에서는 큰 변화가 엿보였다.
지원 가정 내 주 양육자의 가족생활행복도(1~9점)는 지원 전 3.9점에 그쳐 ‘약간 불행하다’에 가까웠지만 지원 후에는 5.78점으로 대폭 향상됐다. ‘보통이다’를 넘어 ‘약간 행복하다’에 도달한 지표다. 우울감(1~4점)에서도 지원 전에는 2.51점에 달했지만 지원 후에는 2점까지 줄어들었다.
이 같은 결과는 희망둥지 시행과 함께 처음 시도된 심리·정서적 지원의 필요성과 맞닿아 있다. 기아대책은 생계 의료 주거 교육비 긴급 지원을 받는 가정 중 심리·정서 치료가 필요한 가정에 심리검사와 치료비를 지원한다.
임 팀장은 “위기 사례를 조사하다 보면 결국 생애주기 속에서 받았던 상처에 기인해 의료적 경제적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일시적 위기 모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삶의 동력을 잃었던 이가 이웃의 도움으로 보호를 받고 회복하게 되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거룩한 부담을 갖고 살게 된다”고 덧붙였다.
기아대책 온라인 소식지에 소개된 지원대상자들의 편지엔 이웃의 도움으로 따뜻한 둥지를 마련한 이들의 손때 묻은 감사가 멈추지 않을 희망을 내뿜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삶을 내려놓고 싶었어요…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던 저희 모녀를 구해줬습니다. 저희처럼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최00 엄마 유00)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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