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큰 시련과 고난이 누적되면 각자가 지닌 회복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사회는 이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표현한다. ‘골든타임’은 사고를 당한 환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 또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긴급지원을 기다리며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회장 유원식)과 국민일보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에 놓인 위기 가정의 실태를 알리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지원해 ‘희망둥지’를 선물하는 과정, 제도적 보완 대책의 필요성 등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무너진 일상, 고립된 가정
4남매를 둔 박경미(가명·48)씨에게 하루는 낮과 밤으로 나뉘지 않는다. 막내아들 석훈이(가명·15)가 잠들어 있는 순간과 깨어있는 순간으로 나뉜다.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석훈이는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어도 뜬 눈으로 아침을 맞기 일쑤다. 진통 끝에 아들이 잠에 들어도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순 없다. 낮에도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계는 막막하기만 하다. 부동산 매매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급여가 끊긴 지 5년째. 그 사이 10억원이란 숫자가 빚으로 쌓였다. 박씨는 “수입이 없어 가스 전기가 끊기고 휴대용 버너에 물을 데워 아이를 씻겨야 했던 날도 이 악물고 버텼는데 남편이 첫째 둘째 아들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쓰고 빚이 늘어나고부턴 그저 세상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월세는커녕 수도세 전기세도 감당할 수 없었던 가족은 거리로 내몰렸다. 다행히 사정을 들은 한 지역 교회가 해외로 출국하게 된 선교사와 연결을 시도했고 선교사의 배려로 선교지에 머무는 동안 집에 머물 수 있게 됐다. 길바닥에 나앉는 상황은 피했지만 언제 다시 거처를 고민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다.
9년째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달고 사는 박씨에게 기댈 곳은 없었다. 이자 상환일이 다가오면 빚 독촉 문자가 휴대폰 화면을 도배했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수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도 했다. 그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딸은 충격을 받아 한동안 심리 불안 증세로 고생을 해야 했다.
박씨네 한 달 수입은 생계급여와 장애연금아동수당 등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 160만원이 전부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이자로만 200만원을 넘게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 손가락이 부쩍 뻣뻣해지고 편측보행이 심해진 석훈이에게 CT촬영과 정밀검진이 필요하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수의사가 꼭 되고 싶어하는 딸이 간곡하게 부탁해 며칠 전 하나 남은 금반지를 팔아 학원비를 냈어요.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에요.”
늘어나는 사회 빈곤층
코로나19 팬데믹이 강타하면서 업종 구분 없이 실직, 폐업 등으로 생계 수단을 잃고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수급자 수는 204만6213명에 달한다. 2019년(179만2012명)에 비해 무려 25만4201명(14.2%) 증가한 수치다.
조사 범위를 넓히면 증가세가 더 두드러진다. 2018년 12월(165만3781명)부터 1년 동안 수급자가 13만8231명(8.3%) 증가한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증가 폭이다. 팬데믹 이후 저소득 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복지지원 예산을 확대하고 지원 대상 기준을 완화했지만 복지사각지대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공적 지원은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충분한 지원을 담보하지 못하며 다양한 위기 상황에 놓인 가정을 즉각적으로 지원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사회 빈곤층의 탈빈곤을 지원하는 ‘자활 사업’도 희망의 동아줄이 돼주진 못한다. 자활 사업 참가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생계 의료 외에 추가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자활 성공률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씨의 경우 일자리 제안이 오더라도 선뜻 일터로 나서지 못한다. 소득인정액이 142만원을 초과하면 기초생활 수급 급여 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박씨는 “장애아를 키우는 입장에서 수급비만으론 생계를 꾸리긴 힘들고, 일을 하러 가면 수급비가 끊기고, 갑자기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 주어지는 기적은 꿈꿀 수도 없다 보니 그야말로 사면초가”라고 토로했다.
심리적 지원의 부재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박씨는 “십수 년째 생계 양육 교육 부채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다 보니 늘 허허벌판에 혼자 서있는 느낌이었다. 오늘 눈 감으면 내일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윤영관(대방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공공, 민간 부문 할 것 없이 위기가정 지원 시스템이 1차적으로 경제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적 지원이 물론 중요하지만 위기 상황의 배경이 된 요인은 다양하게 복합돼 있기 때문에 심리적 지원을 병행해야 대상자가 어려움을 딛고 스스로 극복해내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아대책이 마련한 ‘희망둥지’
2000년부터 위기가정 긴급지원사업을 펼쳐 온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20년 만에 사업을 개편하고 ‘희망둥지’란 이름을 붙인 건 공적 지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기아대책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20년 5월 희망둥지 위기가정긴급지원사업의 닻을 올렸다.
핵심은 ‘즉시성’과 ‘충분성’이다.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해 위기 상황에 노출된 가정, 다른 공적·사적 지원을 받고 있더라도 기존 지원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가정에게 ‘즉시’ ‘충분하게’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원은 경제적 긴급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위기 요인으로부터 일상을 보호하고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심리, 정서치료를 함께 지원한다. 희망을 지향할 수 있는 일상 속 둥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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