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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백세 시대, 백년 믿음

우성규 종교부 차장


“3·1운동 이듬해입니다. 어머니가 평안북도 운산에서 저를 낳으시고 교회에 가셨다가 목격하신 일입니다. 예배당 앞자리에 젊은 부인들이 죽 앉아 있었는데, 남편들이 3·1운동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본 헌병대에 잡혀가 죽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부인들은 남편들을 추모하는 예배를 드리는데도 울지 않더라고 어머니는 말씀했습니다. 나라가 먼저였다는 생각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가정과 교회에 머물다가 3·1운동을 계기로 해서 나라와 민족으로 한 단계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1920년 3월생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책과 영성’ 신년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떠올린 기억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103세가 된 김 교수는 인터뷰가 진행된 90분 내내 호흡조차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논리정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 공동체 의식이 기어코 이어져 우리를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시켜준 것이지요.” 김 교수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자유와 인간애가 넘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1922년생인 유동식 전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지난달 9일 서울 서대문구 루스채플에서 주일 강대상에 올랐다. 검은 두루마기에 흰 수염을 기른 유 전 교수는 매년 1월 둘째주 연세대 대학교회가 자리한 루스채플의 설교를 맡아왔다. 이날 ‘성령의 역사’를 주제로 말씀을 전한 유 전 교수는 “지난 100년간 가장 큰 사건인 8·15광복과 6·25전쟁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구원의 원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유 전 교수는 해방 직전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 규슈 남단의 참호 속에서 미군 탱크가 상륙할 경우 폭탄을 끌어안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기하다가 일왕의 항복 선언을 들었다. 광복 후에는 부산항으로 목선을 타고 돌아오다 대한해협에서 표류해 실종될 위기에 처했는데 기적처럼 구조선을 만난다. 한국전쟁 당시엔 약혼자였던 윤정은 이화여대 영문과 명예교수를 찾기 위해 남하하는 인민군을 뚫고 상경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 등을 앞서 인터뷰를 위해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들려줬다.

유 전 교수 역시 인간애와 자유를 강조한다. 유물사관과 공산주의로 무장한 인민군의 남침을 우리의 힘이 아닌 기독교 중심의 미국을 비롯한 유엔 소속 군대가 막아낸 것이 6·25전쟁이라고 본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행하신 구원의 역사로 낙동강 이남에 밀려 있다가 기적처럼 살아나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세 신앙의 석학들은 농담 섞인 대화를 즐긴다. 유 전 교수는 “코로나가 나한테는 장수의 계기”라며 “매년 해오던 대학교회 신년 설교를 지난해에는 (코로나 예배당 폐쇄로) 못해 1년 더 살게 하시려나 보다 하고 새해를 맞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친구와 가족을 위한 기도만 하고 우리 집에서 밥을 해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위해서는 기도를 안 하다가 최근에서야 아주머니와 그 가족도 신앙 생활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러고 보니 나이가 백세를 넘어도 철들긴 아직 멀었다”며 웃었다.

맑은 정신만큼이나 꼿꼿한 육체를 단련한 비결은 뭘까. 김 교수는 수영과 자전거를 꼽는다. 그는 “50대 중반부터라도 등산이나 정구 등 오랫동안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좋은데 나의 경우는 수영을 했고 자전거도 다리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교수 역시 중년 이후부터 스트레칭의 일종인 기공체조를 습관으로 삼았고 가끔 소화를 위해 적포도주 한잔을 곁들였다고 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교회에서 나누는 성도의 교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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