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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빛의 교회

박지훈 종교부 차장


지난 1일 인천의 한 목사 부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미크론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엔 한국교회를 비난하는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당시 한 기사에 달린 악플 몇 개만 소개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코로나로 교회가 얼마나 유별난 곳인지 알게 됐다” “종교가 또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왜 이런 (비난의) 말들이 나오는지 반성 좀 합시다”…. 물론 댓글창에는 왜 목사일 때만 감염자 직업을 대서특필하느냐는 지적과, 방역 실패의 책임을 교회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여론이 교회를 비난하는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져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렇듯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가 마주한 현실은 선득하기만 하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비호감 순위 첫손에 꼽히는 종교가 돼 버렸다. 한국리서치가 15일 공개한 주요 종교 호감도 조사(100점 만점 기준)만 봐도 알 수 있다.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에서 개신교의 호감도는 31.6점으로 천주교(50.7점)나 불교(50.4점)에 비해 크게 낮았다.

불신자가 기독교인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크게 세 가지다. ①이기적이다. ②말과 행동이 다르다. ③독선적이다. 여기서 눈여겨봄 직한 비판은 ②번이다. 법학자 김두식은 2010년 출간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에서 기독교인이 언행 불일치로 손가락질받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이렇게 추측했다. “행동은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데 고상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마따나 한국교회의 적지 않은 이들은 구약 속 온갖 율법들을 지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를 보여주곤 한다. 김두식은 책에서 이런 사례들을 늘어놓은 뒤 한국교회를 “생명력을 잃은 공동체”로 규정하면서 “퇴락하여 잊혀 가는 양반가의 종손을 연상시킨다”고 적었다. “사회적 영향력은 완전히 상실한 가운데 한 줌 남은 가문의 명예와 공자님 말씀의 자구 해석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종손의 얼굴, 그게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 아닙니까. … 생명력이 완전히 빠져나가 윤기라고는 전혀 없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북어포나 오징어포 또는 잘 말려진 육포를 연상케 합니다.”

현재로선 기독교가 호감의 종교로 거듭날 가능성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목회자들 역시 얼마쯤 무력감을 느끼는 듯하다. 최근 만난 이건영 인천제2교회 담임목사는 “나도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이라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이런 당부를 전했다. “교회에 자주 출석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날 수 없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선(善)이 교회 바깥으로 반사돼야 한다. ‘당신을 보니 교회라는 곳이 나쁘지 않은 곳 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의 빛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드러나야 교회 이미지가 회복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빛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살피자면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빛을 감지하려면 빛의 경로에, 그러니까 빛과 우리의 눈 사이에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광막한 우주 공간으로 나간 우주 비행사를 떠올려 보자. 사방이 햇빛과 별빛으로 가득한 우주 공간에 있으면서도 비행사가 창밖으로 마주하는 건 캄캄한 어둠뿐이다.

이것이 바로 빛의 역설이다. 복음의 빛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 스스로, 혹은 목회자 자신이 빛을 띠려고 한다고 해서 사람들 눈에 교회나 목회자가 빛을 발할 리 없다. 복음과 세상 사이에, 빛과 어둠 사이에 무언가가 있어야 사람들은 복음의 빛을 느낄 수 있다. 크리스천은 바로 이 무언가가 돼야 한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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