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아동복지시설 ‘선덕원’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들어섰다. 2년 전만 해도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아이들과 함께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복지사 1명과 아이들만 모여 트리 장식을 꾸몄다.
코로나19 여파로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을 만나러 오지 못했다. 아이들은 트리 주변을 서성이며 “원래는 트리도 이모(자원봉사자)들하고 같이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이모들이 못 왔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막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동갑내기 정희수·정소민(가명·9)양은 트리를 보며 “우와!”라고 감탄하다가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에게 “올해는 우리끼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44명의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선덕원은 매년 성탄절 전날 자원봉사자와 함께 ‘선덕의 밤’을 개최해 왔다. 30~50명 정도의 후원자와 함께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즐기며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다.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아이들끼리 조촐하게 연말을 보냈던 터라 올해는 다를 거란 기대가 컸었다고 한다. 한 달 전 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가면서 행사 소식을 예고하자 아이들은 “드디어 이모들과 파티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올 행사도 무산됐다는 소식이 이날 전해진 것이다. 교사 박모씨는 “아이들이 속상해할까봐 취소 소식을 전하는 걸 미뤘는데 어쩔 수 없이 오늘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했다.
희수는 선생님의 말을 믿기 싫다는 듯 몇 번을 “정말요? 왜요? ○○이모도 못 와요?”라고 되물었다. 아이는 기자에게도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춰서 친구 8명과 공연하려고 춤도 이미 다 외웠다”며 “이번에는 꼭 이모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속상해요”라고 울상을 지었다. 소민이도 “어린이날에도 이모들이 온다고 해서 공연을 준비했다가 결국 못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2년여 동안 지속된 팬데믹 상황은 바깥사람과의 관계도 단절시켰다. 방과후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미술 수업, 우쿨렐레 연주, 크리스마스 소품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 중단된 상태다. 희수는 “원래 집에 와도 이모들이 있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학교 끝나면 아무도 못 만나고 집에만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정서 불안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그동안 받아왔던 애정과 관심이 끊기자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덕원 관계자는 “외부와의 감정 교류 자체가 없는 상태”라며 “충분히 소통하며 감정을 배출하는 사회화 과정이 사라지니 아이들이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물품 지원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정서 안정을 도모할 ‘심리치료 프로그램’ 후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선덕원뿐 아니라 많은 사회복지기관이 코로나19 속에 후원이 끊기거나 줄어 더욱 시린 연말을 보내고 있다. 연말 대표적인 봉사활동이었던 ‘쪽방촌 연탄 나르기’ 역시 자원봉사자들의 발 길이 뚝 끊겼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자원봉사자 수가 총 869명이었다. 12월이면 매일 50명가량이 모였지만 최근에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후원도 크게 줄었다. 올해 기부된 연탄은 47만장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45%) 떨어졌다. 허기복 밥상공동체복지재단 대표는 “쪽방촌 노인들에게 ‘올해는 특히 더 아껴 쓰셔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해 속상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1인당 한 달에 150장씩 지원하던 연탄을 올해는 100장밖에 나눠주지 못하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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