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계절의 분위기를 드러낸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새 소리, 시냇물, 태풍, 비, 바람 등의 자연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곡을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할 2050년 버전으로 편곡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오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사계 2050-더 [언서튼] 포 시즌스’(The [uncertain] Four Seasons)는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가 감축 없이 배출되는 상황을 전제한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와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해 만든 2050년 미래 버전의 ‘사계’를 연주한 뒤 오리지널 버전을 관객에게 들려줌으로써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공연이다.
세계적인 디지털 마케팅 회사 AKQA(아카) 주도로 작곡가 휴 크로스웨이트, 호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모나쉬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연구 허브 등과 협업해 AI가 편곡할 수 있도록 음악 디자인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첫 결과물을 지난 1월 시드니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다. 이후 한국 독일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음악 단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차례차례 공연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선 음악 매니지먼트 겸 기획사인 뮤직앤아트컴퍼니가 파트너다. 공연에선 임지영이 솔리스트를,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악장 웨인 린이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다.
국가마다 기후변화 데이터가 다른 만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편곡된 ‘사계’는 하나같이 거칠고 황량한 분위기의 음악이 된다. 오리지널 버전에선 봄과 여름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선율이 나오지만 ‘사계 2050’에선 서식지 파괴에 따른 멸종과 생물 다양성 감소가 예상돼 이런 음이 제거됐다. 지구 온난화로 폭염이 늘고 태풍의 강도가 세지는 만큼 여름과 가을에는 한층 요란하고 강렬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대 스크린에는 미래의 기후를 시각화한 이미지를 상영한다.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로도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한국 공연에선 사진작가 정지필과 협업해 공연장 로비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의 미래를 빛의 스펙트럼으로 살펴보는 ‘스펙트라 서울’도 전시된다.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임지영은 “예술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우리가 사는 자연환경에 관심을 갖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 여러분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민해보는 계기를 얻는다면 기쁠 것 같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1일 스코틀랜드에서 개막하는 제2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선 개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 등 세계 각지의 ‘사계 2050’ 연주가 24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송출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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