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에 따라 금융권에 ‘연쇄 대출 절벽’ 조짐이 나타나면서 집을 사거나 전셋집을 구하려는 실수요자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불과 석 달 전에 정부·여당이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LTV(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돌연 가계부채를 이유로 ‘대출 중단’이란 극약 처방을 낸 것을 두고 정책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에서 대출 중단 선언이 잇따르면서 시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알아보던 직장인 박모(34)씨는 22일 “가뜩이나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려서 힘든데 대출 중단 소식까지 나오자 머릿속이 정말 하얘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가 (정책 실패로) 집값이랑 전셋값을 다 올려놓는 바람에 부동산 담보 대출 규모가 커진 건데 그 책임을 왜 개인에게 돌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최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리스크와 기회를 판단해 자금을 운용할 자유가 있다”며 대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도 “정부가 사다리를 걷어차는 격” “돈 없는 서민은 외곽으로 나가라는 거냐”는 등 날 선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이 대출 문제에 오락가락하면서 시장 혼란을 키워 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실수요자가 집을 사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거나 더 큰 부담이 된다든지 하는 부분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대출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5월 2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가 무주택 서민·실수요자에 대해 LTV를 최대 20% 포인트까지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투기와 무관한 전세자금 대출까지 막히다 보니 서민·실수요자 피해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6·17 대책에 따라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규제지역 내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사면 전세대출이 즉시 회수된다. 전세자금 대출 중단은 그동안 “서민·실수요자는 최대한 보호한다는 게 대원칙” “실수요자들이 필요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세심히 신경 쓸 것”이라고 밝혀온 금융 당국 입장과도 배치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9.1%가 ‘가장 필요한 주거 지원 프로그램’으로 전세자금이나 주택 구매자금 대출 지원을 꼽았다. 특히 소득 하위 가구에서 전세자금 대출 지원을 꼽은 응답이 27.4%로 가장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값이 잡힐 기미가 안 보이자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핑계로 민심과 정반대 방향으로 폭주하는 셈이다.
대출 억제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6년 11월 당국은 농협 등 6개 시중은행에 대해 신규 주택담보대출 억제를 주문했지만, 2년 뒤인 2008년 11월까지 전국 주택 가격은 9.12%(KB국민은행 기준) 올랐다.
세종=이종선 기자, 조민아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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