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이 클래식계 민간 기획사들과 함께 제1회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를 개최한다. 오는 27~29일 열리는 이번 축제는 코로나19 피해가 큰 클래식계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13개의 공연팀과 함께 축제의 개·폐막은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축제와 함께 출범한 오케스트라는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악장 이지혜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인 박지윤이 번갈아 악장을 맡는 등 해외 교향악단에서 활약하는 젊은 연주자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공모를 통해 22대 1의 경쟁 끝에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이승원(31)이 낙점됐다.
예술의전당에서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이승원은 “90명 정도로 이뤄진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의 면면이 가히 어벤저스급”이라면서 “젊은 지휘자로서 뛰어난 연주자들과 음악을 만들 기회를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개막 공연에선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등을 연주하며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협연한다. 폐막 공연에선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을 선보이며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협연한다. 이승원은 “프로그램 선정에 지휘자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 주신 덕분에 대규모 편성이 필요한 말러의 교향곡을 할 수 있었다”며 “말러 교향곡 1번은 각 악기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콰르텟 퇴단 후 지휘자로 본격 활동
최근 지휘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승원은 비올라 독주자이자 2009~2017년 현악 사중주단인 노부스 콰르텟의 멤버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휘에 더 집중하기 위해 노부스 콰르텟을 퇴단했다. 그는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최고 전문연주자과정 학위까지 마쳤지만 2014년 같은 학교 오케스트라 지휘 전공으로 입학해 학사 및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함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지휘 부문의 최고 연주자과정도 마쳤다.
“어릴 때부터 지휘자의 꿈을 갖고 있었어요. 연주자로 활동하면서도 적당한 시기에 지휘자로 전향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연주자 가운데 지휘자로 전향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대체로 연주자로서 정점을 찍은 뒤 그 명성을 등에 업고 지휘자로 나섭니다. 하지만 저는 학부부터 지휘를 확실히 공부하고 싶었어요. 지휘자로서 경력을 쌓고 이름을 알리려면 거장과 관계나 소속사의 후원 같은 네트워킹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제가 콰르텟의 멤버로 주로 활동하다 보니 그동안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와 접점이 없었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그는 지휘자로서 이름을 알리고 오케스트라 지휘 기회를 얻기 위해 여러 지휘 콩쿠르와 오디션에 나갔다. 2017년 한국지휘자협회 주최 지휘 마스터클래스와 오디션에서 최우수 지휘자로 선정된 그는 국내 여러 오케스트라 지휘를 특전으로 받았다. 2018년 루마니아에서 개최된 BMI 국제 지휘 콩쿠르와 대만에서 열린 타이베이 지휘 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부상으로 해당 국가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했다. 비올라와 현악 콰르텟으로 수많은 국제 기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이지만 지휘 콩쿠르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단다.
“지휘 콩쿠르는 기악 콩쿠르보다 경쟁이 센 편입니다. 특히 본선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치러야 해서 예선 영상 심사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곡에 대한 해석을 평가하는 결선에선 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단원들을 음악적으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는 지휘자로서 해외 페스티벌, 마스터클래스, 아카데미, 워크숍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콩쿠르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다니엘레 가티, 네메 예르비, 크리스티안 마첼라루 같은 거장의 가르침을 받으며 지휘 실력을 끌어올렸다. 특히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이 2019년 유치한 리카르도 무티 이탈리안 오페라 아카데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발돼 오페라 지휘로도 발을 넓혔다.
그는 “프로 음악가나 거장과 함께하는 동안 많은 영감을 받는다”면서 “무티 선생님의 경우 오페라는 가사 하나하나가 음악과 연결돼 있다는 깨달음을 주셨다”고 말했다.
이승원을 사로잡은 지휘의 매력
이승원은 지휘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올해 초 독일의 명문 음대인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비올라 교수로 종신 취임했다. 독일의 음대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비올라 교수이자 한국인 역대 최연소 비올라 교수다.
“비올라 교수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저는 비올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연주자로서 무대에 계속 서고 싶습니다. 유럽에서 지휘자로 더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가 2016년부터 베를린의 바흐 뮤직 김나지움(예술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는 것도 주목된다. 원래 1년만 대타로 할 예정이었으나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서 학교 측의 요청으로 지금까지 맡고 있다. 그는 “독일은 음악 강국이지만 조기교육이 발달한 편은 아니어서 예중이나 예고나 많지 않다”면서 “베를린 바흐 뮤직 김나지움은 베를린의 유일한 음악 전문 예고인데, 학생 대부분이 베를린필 단원의 아이들이다. 나중에 프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아이들이 나와 함께 그 역량을 처음으로 키운다는 점에서 책임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를 사로잡은 지휘의 매력은 어떤 것일까. 고생스러운 길을 걸어가는데도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는 “연주자가 직접 소리를 낸다면 지휘자는 직접 연주하는 대신 강력한 설득력으로 각자 다른 음악적 주관을 가진 단원의 연주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음악은 연주자일 때보다 성취감이 크다”면서 “연주자가 관객과 직접 소통한다면 지휘자는 우선 오케스트라와 소통한 뒤 연주를 통해 관객과 다시 소통하는 ‘이중적 소통’을 하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달걀로 바위 치기’ 하듯 지휘자로서 경력을 쌓아 왔다. 솔직히 이렇게 어렵고 힘들 줄 몰랐다”면서도 “하지만 안주하기보다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지휘자로서 걸어가는 과정이 긴장감과 설렘을 준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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