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건 일단 마음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쉽게 몰아낼 수 없다. 요즘 마음이 일렁이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빴고 중요한 일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일상을 이어나갔다. 생각을 지우고 싶어서 신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어도 그때뿐이었다. 내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망연자실 바라보게 됐다. 도대체 이런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늘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열병 앞에서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책장에서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을 꺼내 펼쳐봤다. 마음과 관련된 단어들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깊고 간결한 데다 문장이 아름다워 위로가 되는 책이다. 책 뒷부분에는 ‘마음 찾아보기’라는 색인이 있어 그날의 심리 상태에 필요한 단어부터 찾아볼 수 있다. 간극, 갈등, 감격, 감정, 걱정 등 기역으로 시작하는 단어들부터 히읗 섹션에 있는 혼란, 후회, 흔들림, 희망에 이르기까지 눈물, 덧없음, 매력, 부끄러움, 슬픔, 우울, 이기심, 참회, 평화를 지나야 한다.
나는 지읒 섹션의 ‘중요하다:소중하다’를 읽기 위해 57페이지를 열었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라는 문장은 뒤 페이지의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와 짝을 이뤄 두 단어의 의미를 구분해 주었다. ‘이 세상 모든 애인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다’라는 문장 앞에서는 쓸쓸해져 한참을 머무르기도 했다.
소중하다와 중요하다를 엄밀히 구분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국어사전을 검색해봤다. 소중하다는 ‘매우 귀중하다’, 중요하다는 ‘귀중하고 요긴하다’라고 적혀 있다. 모호한 정의는 ‘나에게 가족은 소중하다. 선거는 민주 정치에 요긴하다’는 예문 덕분에 조금 선명해졌다. 생각해보니 소중한 것은 가족이나 애인처럼 타인과의 관계인 경우가 많고, 중요한 것은 돈이나 일처럼 사회적 지위를 위한 방편인 경우가 많다. 작가의 말처럼, 소중한 것은 나의 행복과 더 관련이 있지만 중요한 것을 위해 희생되곤 한다.
‘마음사전’이 있던 책장 근처에는 전에 심리 검사를 받았던 결과를 책으로 만든 ‘내마음보고서’도 두 권 꽂혀 있었다. 2013년의 보고서에는 ‘젖은 날개를 털어야 할 때’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나의 근심’ 부분에는 자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높다고 적혀 있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그랬을 터였다. 2020년의 책에는 ‘한 귀퉁이 둥지를 튼’이라는 부제가 있어 흐뭇했던 기억이 났다. ‘나의 근심’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불상사를 겪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크다고 돼 있다. 맞다, 그때 정말 그랬었다.
두 권의 보고서를 다시 보면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에 대해 꽤 잘 파악하고 있군’ 하고 이해받는 느낌, ‘그래, 나 이런 면이 있어’라는 인정, ‘스트레스 지수는 높지만 당신은 우울증이 아닙니다’라는 진단에 안도했다. 그러고 보니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은 많은데, 마음이 아플 때 병원을 찾은 적은 없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영양제를 챙겨 먹고 가끔 산책도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데 마음의 단련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최근에 읽은 소설에는 마음이 강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내가 입원한 가운데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도 가족에게 늘 다정한 아버지를 보며, 딸은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마음에 꽃을 심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들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은 아버지 덕분에 딸의 마음이 지켜졌다. 내 마음에도 꽃을 심고 싶다. 나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지킬 수 있는 꽃을. 중요한 것들과 소중한 것들을 구분하며 무게 중심을 잡고 싶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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