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美) 점령군’ 발언이 여야의 역사관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셀프 역사 왜곡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이 지사를 첫 공개 비난했고, 국민의힘 인사들 역시 이 지사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이에 이 지사가 “구태 색깔공세”라고 정면 반박하고 나서면서 여야 1위 대권주자 간 신경전마저 벌어지는 양상이다.
윤 전 총장은 4일 페이스북에 “(김원웅) 광복회장의 ‘미국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후보 이 지사도 이어받았다”며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께서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윤 전 총장이 직접 쓴 글이라고 한다.
이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일 고향인 경북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단계에서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고 발언했다. 야당이 반발하자 3일 입장문을 내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온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라며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전반을 공격한 것이다.
그는 “그들은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면서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고 있는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이념에 취해 국민 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이 지사 등의 언행은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저에 대한 윤 전 총장의 첫 정치발언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제 발언을 왜곡 조작한 구태 색깔공세라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맞받았다. 그는 “해방 후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과 이남에 진주한 미군 모두 점령군이 맞다”며 “윤 전 총장이 숭상하실 이승만 전 대통령,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고 거듭 반박했다.
이 지사의 반박에도 야당 대권 주자들의 공격은 이어졌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또 친미-반미, 친일-반일의 편 가르기로 소중한 5년을 허송세월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썼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대한민국을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이 만든 지배체제로 더럽혀진 나라로 이야기한 것은 이 지사 본인”이라고 날을 세웠다. “착한 소련군·나쁜 미군 설명은 좋게 봐도 초등학생 수준의 세계관”(정진석 의원), “사실(史實)과 다른 잠꼬대”(신원식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의 비판도 줄을 이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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