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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법 감정 외면”-“용기 있는 판결” 강제징용 판결 파장

비판 여론 속 판사 탄핵 청원 등장… 대법-하급심 불일치 해결도 시급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양호)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각하 판결은 국내 법 감정과 국제법적 현실의 괴리가 커 당분간 파장이 지속될 전망이다. ‘개인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 판결’이라는 비판에 더해 재판장 탄핵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반면 국제적 분쟁에 해당할 사안을 국내 법질서와 가치관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런 차원에서 용기 있는 판결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나온다.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했던 임재성 변호사는 8일 대법원에서의 승소 확정 판결과 정반대로 달라진 전날 판결에 대해 “비법률적 근거가 많다”고 비판했다. 논리와 증거가 아닌 가정과 상상에 따라 판결했다는 비판이었다. 전날 재판부는 소송을 각하하면서 한국의 사법 신뢰 및 위신 손상 등 국제적 역효과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법률가들조차 의미 있는 입장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식민 지배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해석”이라는 판결을 놓고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도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재판부의 판결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친일 사고의 잔재”라는 논평을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예 ‘반국가적 행위’라며 김 부장판사를 탄핵 조치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강제징용의 불법성과 피해가 심각할수록 국내 시각을 앞세우기보다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한 부장판사는 “민족정서 등 합리성이 마비될 수 있는 영역을 판단할 때일수록 사법부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제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문제가 실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따져진다면, 우리의 생각대로 결론이 제시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법학계 인사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와 식민 지배에 따른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ICJ 판례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인 ‘국가면제’ 이론도 법 감정과 먼 판결들의 한 원인이다. 한국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단 문제는 ‘이탈리아-독일 사건’과 함께 거론된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강제노동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독일이 ICJ에 사건을 제소했고, ICJ는 2012년 2월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채 3년이 안 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이 하급심의 문제 제기 대상이 되면서 사법부가 보다 진중한 결론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일제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재판은 최근 들어 사법부 내부에서도 판단이 엇갈린다. 올 들어 법원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놓고서도 상이한 판단이 제시됐다.

법관들은 결국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찾아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천대엽 대법관은 지난 4월 인사청문회에서 “국제법을 포함해 다양한 법적 쟁점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 부장판사는 “국제사회 속에서도 적용되는 문제들의 판단이 ‘K판결’ 식이라면 곤란하다”며 “확실한 논리로 확실한 공감대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박성영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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