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아의 고통을 줄여주는 주사 헴리브라 보험 급여 논의가 한 차례 무산된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외부 위원 사이 ‘네 탓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심평원은 논의 무산이 “외부 위원 불참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외부 위원은 “심평원으로부터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혈우병 환아들은 기약 없는 다음 위원회를 기다리며 가슴에 계속 정맥 주사를 맞아야 한다.
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8일 심평원은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보험급여 심사위원회를 열고 혈우병 환자들의 요양 급여 비용 인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안건을 다루지 못했다. 위원회는 심평원 내부 위원 4명과 외부(전문가) 위원 5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날 참석자는 내부 위원 4명뿐이었다. 의결 정족수(5명)를 채우지 못해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위원회는 헴리브라를 피하에 투약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한국혈우병환우회측 요청(국민일보 5월 5일자 12면 보도 참조)을 받아 들여 개최될 예정이었다. 주로 어릴 때 발병하는 혈우병은 작은 상처에도 혈액이 응고 되지 않아 지혈이 더딘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환우회 측은 회의 무산 사실도 6일 뒤에서야 심평원 문의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앞서 심평원은 급여 기준을 변경해 12세 미만 혈우병 아이들의 헴리브라 요양급여 인정·처방 조건을 ‘면역관용요법(ITI)에 실패한 경우’로 한정했다. 가슴에 정맥관을 삽입한 뒤 주사하는 방식에 실패했을 때만 피하에 헴리브라를 맞을 수 있다고 결정하면서 혈우병 환우 가족들이 반발했다.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 ITI 방식으로 주사하면 가슴에 피멍이 드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위원회가 열리지 않은 건 ‘외부 위원 탓’이라는 입장이다. 심평원 한 관계자는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위원 5명이 참석을 못해서 의결을 못했다”고 설명했다. 회의가 예정대로 열렸지만 외부 위원이 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날 위원회 참석이 예정됐던 외부 위원 말은 다르다. 한 위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환자 단체들이 (회의장을) 점령하는 바람에 회의가 무산됐다’는 전화가 회의 3시간 전쯤 심평원으로부터 걸려왔다”며 “오지 말라고 하는 걸 꾸역꾸역 갈 순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해당 위원은 회의 전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 측은 “오지 말라고 얘기하거나 그런 뉘앙스로 말한 적이 전혀 없었다”며 “외부 위원들이 불참한 건 전적으로 위원들이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원회 개최가 지연되면서 혈우병 환아와 보호자들은 다음 위원회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심평원은 “이달 중 위원회를 열겠다”면서도 “9명의 일정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 확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결정이 늦어질수록 아이들 출혈 피해만 커진다”면서 “심평원에서 조속히 회의를 다시 소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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