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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토박이 화가가 그린 백록담·천지연… 제주가 달라 보이네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제주’ 실경산수와 다른 신선함 매력

‘제주십경도’ 속 천지연.

제주도를 여행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책 한 권을 옆에 끼고 가는 거다. 미술사학자 최열(65)씨가 쓴 ‘옛 그림으로 본 제주’(혜화1117). 구체적으로는 백록담 천지연 성산 영곡 산방 등 ‘제주십경도’ ‘제주십이경도’ 속 명승을 찾아 조선시대 토박이 화가들의 눈으로 구경해 보는 거다.

이들 옛 그림에는 조선 중기까지의 중국풍 관념 산수나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이 개척했다는 실경산수와 전혀 다른, 색다른 맛이 있다. 그 신선함이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저자가 그랬다. 20여년 전이다. 제주 화가 김남길이 그린 41폭의 ‘탐라순력도’를 봤을 때 민화도 속화도 아닌 독창적 세계에 반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이 이 책으로 완결됐다. ‘제주를 그린 그림을 집대성한 최초의 저작’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림과 그림지도 135점을 망라해 제주를 그린 화가들의 예술적 성취와 그 가치를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내 기관과 개인 소장가뿐 아니라 일본의 고려미술관 오사카부립나카노시마도서관 등 해외 소장 그림까지 담아 그림이 풍성하다.

제주도는 항해술 발달 이전에는 환상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동쪽 끝 불로장생의 신비를 간직한 섬 영주(瀛洲)라고 믿었다. ‘영주십경도’라는 제목에는 토박이들이 갖는 자부심이 넘쳐난다. 한때 탐라왕국을 이뤘고 신라와 고려시대까지도 자치정부 같은 왕국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중앙집권체제에 편입되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저자의 눈은 이처럼 제주의 유구한 역사에 닿았고 1945년 패전을 앞둔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선택한 옥쇄 작전의 마지막 결전지, 해방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른 민간인 학살의 현장 등 굴곡진 현대사의 아픔까지 어루만진다. 글 속에 녹아있는 제주를 향한 따뜻한 시선은 김남길의 ‘탐라순력도’ 마지막 그림 ‘호연금서’가 갖는 따뜻한 이미지와 닮았다. 사유의 흐름을 따라 노 젓듯 휘저어가는 글솜씨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489쪽, 3만8500원.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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