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정부가 책정한 주택 공시가격(안)에서 비상식적인 사례가 속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아파트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역전했고, 임대아파트 공시가격이 동일 평수의 분양아파트 공시가를 추월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시가격 신뢰도가 흔들리면서 이를 근거로 책정되는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저항’도 한층 거세질 조짐이다.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는 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공시가 전면 재조사를 촉구했다. 정부가 올해 책정한 공시가 중 이상하거나 불공정하거나 틀린 사례를 다수 제시했다.
공시가가 실거래가를 추월한 사례가 나왔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시가 현실화율 목표치를 단번에 초과 달성한 꼴이다. 60~70%인 공시가 현실화율(공시가격÷시세)을 90%로 올리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2020년에 지어진 서초동 A아파트(80.52㎡·24.4평)는 지난해 12억6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올해 공시가는 무려 15억3800만원이 됐다. 공시가 현실화율로 따지면 122.1%에 이른다. 서초구가 조사한 4284가구 중 136가구가 공시가·실거래가 역전 사례에 속했다. 주로 신규 아파트거나 규모가 작아 거래가 적은 아파트였다.
공시가 책정이 아예 잘못된 경우도 많았다. 공동주택으로 공시가가 산정된 제주도의 건물 11곳이 사실은 숙박업소였던 것이다. 제주도는 “한국부동산원의 현장조사 부실이 명백히 확인된 케이스”라고 했다.
똑같은 아파트단지에서 같은 면적을 지닌 아파트들의 공시가 변동률이 다른 경우도 나타났다. 공시가 책정의 형평성이 어긋난 사례로 해석됐다. 서초구 반포 훼미리아파트 101·102동은 같은 아파트인데도 공시가 상승률이 서로 15% 포인트 차이가 났다. 총 28가구 102동(84.63㎡·25.6평)의 공시가 9억6700만원(상승률 29.59%)은 48가구 101동(84.12㎡·25.4평) 공시가 8억800만원(상승률 14.96%)을 훨씬 웃돌았다. 이렇게 102동은 종부세 대상이 됐고, 101동은 비대상이 됐다.
제주도도 비슷했다. 같은 아파트단지 같은 동인데 2라인은 공시가가 11.5% 떨어지고, 4라인은 6.8% 올랐다. 아파트단지 내 어떤 동은 공시가가 오르고, 나머지 다른 동은 모두 하락한 데도 있었다. 제주도는 “각 가구 특성에 따라 공시가가 다를 순 있지만 지난해 대비 상승률이 달라지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조사산정자의 전문성이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임대아파트의 공시가가 분양아파트의 공시가를 추월한 사례도 도마에 올랐다. 2013년 지어진 358가구 임대아파트인 서초구 LH 5단지 84.95㎡(25.7평)형의 공시가가 10억1600만원(상승률 53.9%)을 기록한 반면 2012년 지어진 1082가구 분양아파트 서초힐스의 같은 평형 아파트 공시가는 9억8200만원(상승률 26.9%)이었다.
해당 사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분양가 높이기 사전 꼼수’라는 의혹까지 나왔다. 서초구는 “LH가 향후 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 시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당장 재산세·종부세 과세 대상이 아닌 거주자들이 공시가에 민감하지 않다는 걸 노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거래가 이뤄진 주택의 공시가 상승률이 유독 높아지는 경향도 발견됐다. 빌라처럼 거래가 적어 낮은 실거래가격을 유지하던 곳에 거래가 발생하면 일시에 공시가가 100% 이상 뛰기도 했다. 제주도는 “공시가 인상 피해가 서민주택에 집중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정부의 공시가 현실화 방침에 맹공을 퍼부었다.
원 지사는 “제주도는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 7채 중에서 1채가 공시가 오류였다”며 “정부는 엉터리 공시가로 증세를 고집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조 구청장은 “불공정하고 원칙 없는 공시가로 산정된 세금은 서민한테 벌금을 부과한 것”이라며 “정부가 공시가격 산정 근거를 제시하고, 공시가 결정권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14년 만에 최대 폭(19.1%)으로 인상했다. 이에 따라 재산세·종부세 부담이 늘 것으로 우려되자 일부 주택 소유자들은 집단저항에까지 나섰다. 정부 공시가격에 대한 의견제출 건수도 역대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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