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난은 공평하지 않다. 어렵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특히 가혹하다. 비장애인은 미처 몰랐던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듣기 위해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김미경)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일반인 도우미가 명부 작성과 체온 측정을 도운 뒤 ‘이웃을 내 몸같이’라고 쓰인 노란색 스티커를 붙여줬다. 이곳 복지관에는 하루 평균 300여명의 시각장애인이 찾는다. 건물 내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니 여느 시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확산방지 항균 필름이 붙어있는데, 그 위에 작은 점자 스티커가 덧대어져 있다. 김미경 관장이 말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본래 점자가 새겨진 버튼이 설치돼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닥친 뒤 버튼 위에 항균 필름을 붙인 곳이 많습니다. 그게 점자를 가리면서 안 그래도 외출이 힘든 시각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실로암복지관이 문제를 제기해서 일부 관공서가 항균 필름 위에 점자 스티커를 붙였는데, 전국 대부분 아파트는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회의실에서 마주한 남정한 실로암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다른 사례를 들었다. 남 소장은 오른쪽 눈의 시력이 약한 장애인이다. 그는 “코로나19로 동네 분식점조차 종업원을 줄이고 비대면 서비스를 위해 디지털 터치형 주문 시스템인 키오스크를 들여놨는데, 이게 시각장애인은 전혀 이용할 수 없다”면서 “적어도 은행 ATM처럼 시각장애인이 이어폰을 꽂아 음성으로 안내받도록 해달라고 이야기하지만, 기기 도입에 급급해 시각장애인 배려는 미미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노형지 실로암복지관 사무국장은 “시각장애인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생활치료시설로 이송됐을 때 활동지원서비스를 할 인력을 찾지 못해 정부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면서 “가까스로 집 밖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던 장애인 대부분이 코로나19가 2년째 이어지면서 다시 ‘집콕’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장애인을 돌보는 부모나 보호자의 양육 부담이 가중되고 고립감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도 심각한 상황이다.
실로암복지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맹인선교부 출신의 김선태 목사가 활동가들과 함께 1997년 세운 복지시설이다. 실로암안과병원이 치료를 통해 시력 회복을 돕는다면, 실로암복지관은 치료가 어려운 이들에게 점자 보행 컴퓨터 등의 교육과 재활을 통해 삶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실로암복지관이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 봉천역 일대엔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 지금의 복지관 부지는 서울 영락교회 한 성도 가족의 기부로 마련됐다.
김 관장은 “지역에서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교회의 노력이 있기에 그래도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관 인근 관악중앙교회(이제학 목사)와 신림제일교회(김영묵 목사)는 코로나19로 성도들의 공동식사와 소모임이 금지된 상황이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반찬 후원은 계속하고 있다. 서울 도림교회(정명철 목사)는 시각장애인 학생 장학지원을 굳건하게 이어가고 있다. 김 관장은 “교회 청년부원들이 각자 집에서 시각장애인 점자도서 제작을 돕는 ‘마이픽서비스’에 참여하는 등 비대면 자원봉사는 오히려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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