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金’과 겁 없는 맞장… 셔틀콕 천재소녀, 도쿄 도전장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미래’ ‘셔틀콕 천재소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배드민턴 여자단식 국가대표 안세영(19·삼성생명)이 무서운 건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빠른 습득력 때문이다.

안세영은 지난 1월부터 태국 방콕에서 잇따라 열린 3개의 국제대회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카롤리나 마린(28·스페인)과 겨뤘다. 그는 요넥스 태국오픈과 도요타 태국오픈 준결승전에서 모두 패했지만 결국 월드 투어 파이널 8강전에서 마린을 누르고 포효했다. 득점할 때마다 고함을 질러 상대의 기를 꺾는 마린에게 무표정으로 맞섰던 안세영은 그때만큼은 한껏 소리를 지르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세 개의 대회에서 나란히 동메달 세 개를 수확하면서 세계랭킹 8위로 올라섰다.


안세영은 2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마린이 경험이 많은 선수라 경기에서 내가 끌려다녔는데 두 번을 지니까 승부욕이 생기더라”며 “올림픽에서도 만날 상대인 만큼 꼭 이겨야 된다고 생각해 끝까지 집중했다”고 말했다. 결국 안세영은 월드 투어 파이널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마린을 2대 1(21-16 14-21 21-19)로 꺾고 조 1위로 4강에 올랐다. 다만 준결승전에서 세계랭킹 1위 타이쯔잉(대만)에게 0대 2(18-21 12-21)로 패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안세영은 올림픽 금맥 소식이 잠잠한 한국 배드민턴계의 신성이다. 지난 2017년 12월 광주체중 3학년 15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7전 전승을 거둔 뒤 중학생으로는 처음 단식 대표로 선발됐다. 그리고 2019년 수디르만컵(세계혼합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타이쯔잉을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키고 한국 선수로는 처음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신인상을 받았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출현한 새로운 ‘재목’에 배드민턴계가 흥분하는 건 당연지사. 한국 여자단식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방수현이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더 메달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그해 세계랭킹 99위로 시작해 프랑스오픈 우승 등 5개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9위까지 급상승했다. 그의 활약 덕분에 한국은 세계랭킹 16위 중 한 국가에서 최대 두 명까지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 티켓 중 한 장을 사실상 확정했다.

안세영이 처음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건 풍암초 1학년 때다. 생활체육인이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코트장을 자주 찾았다. 그는 “부모님께서 배드민턴을 해볼 거냐고 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 만난 은사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 이용대의 스승이기도 한 풍암초등학교 배드민턴부 최용호 감독이었다. 안세영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최 감독님이 1등으로 만들어준다며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며 “그때부터 배드민턴을 제 직업으로 생각하고 기초 훈련을 반복했다”고 회고했다.


이제 안세영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그는 “주목받지 못했을 때는 지더라도 다음 경기에 마음 편하게 뛸 수 있었다. 대회에서 상대방을 만나는 것 자체가 배우고 즐기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며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되도록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장영수 코치는 “2019년부터 상위 레벨의 국제대회에 나가면서 강한 상대들을 만난 세영이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면서 승부욕이 생기는 게 부담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면서도 “세영이는 굉장한 노력파다. 경기에서의 담대한 마음이나 훈련을 즐기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다만 대표팀은 안세영에게 작용하는 부담감이 부정적으로 미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김충회 감독은 “세영이가 쉬지 않고 운동하는 스타일이다. 연습을 안 하면 대회에서 질 것 같다는 강박관념이 좀 있는 것 같다”며 “적절한 휴식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포츠정책과학원과 연계해 심리 훈련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3위까지 선수들과는 근력과 경험 모두 차이가 있으므로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세영의 강점은 역시 젊음이다. 그는 “어떤 대회를 나가든지 내가 막내다. 상대 선수들보다 어리니까 체력이 낫지 않나 생각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뛰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선배 언니들도 내가 아직 젊어서 회복속도가 빠르다고 칭찬해줬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행보는 5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인디아오픈 선수권대회로 향한다. 안세영은 “처음엔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기대해주시는 데다 나 역시 대한민국 대표로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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