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가 서머나교회입니다. 그 교회 감독으로 재직하다 순교한 분이 폴리카르푸스입니다. 그는 평소 예수의 말씀을 따른 삶을 중시하다 화형을 당하면서까지 “86년 동안 내가 주님을 섬겼고 그분이 나에게 해롭게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라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이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삶 속에서 예수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저마다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하지만,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사랑은 바로 예수 사랑입니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예수의 말씀과 행위가 항상 살아있어야 합니다.
예수 말씀을 통해 전해지는 뜨거운 예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살아가는 나날 동안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예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사람은 삭막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예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가 남긴 말씀에는 자기 몸을 직접 우리에게 나눠주신 예수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모두 부어주신 게 예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아낌없이 부어주신 게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조용히 마음에 새기면서 입으로 읊조리니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12번째 곡인 ‘우리를 위해 한 아기 나셨다’는 곡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예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지혜의 말씀에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뒤 소외된 사람을 찾아 사랑을 나누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해 찾아오셔서 무한한 사랑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유대인이 줄기차게 기다려온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복음서가 전하는데, 이것은 실로 눈물 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메시아로 오셨지만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은 외모만 중시하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마땅한 공간이 없으셨던 예수께서는 기회 닿는 대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셨던 겁니다.
유대교 랍비들의 구전을 집대성한 책인 ‘미쉬나’의 아보트편(4:11)에 나오는 표현처럼 예수는 ‘저들의 모임’에서 가르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와 히브리어 카할입니다. 두 단어의 의미는 모두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공생애가 ‘저들의 모임’에서 계속되다 보니 외모만 찾던 유대인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거부하고 맙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행전 2장 36절에 기록된 대로 당시 권세가 어마어마하던 로마 황제를 주님으로 우상 숭배하며 섬기던 어리석은 백성들을 향해 “오직 주와 그리스도는 예수밖에 없다”고 선언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계만방으로부터 모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입니다.
소기천 목사 (장로회신학대 신약학 교수)
◇소기천 목사는 장로회신학대를 졸업 후 연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클레어몬트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장신대 신약학 교수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과 한국교회총연합 동성애대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말씀연구소 소장과 기독교신문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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