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히브리인은 지구가 평평하고 둥글다고 믿는 ‘지구 평면론자’였다. 구약성경 창세기와 사무엘하 등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지구가 “평평하고 둥글며 지지하는 기초가 있고 물로 에워싸여 있다”고 믿었다. 현대 그리스도인도 인류가 이뤄온 과학의 진보를 무시하고 구약성경의 본문을 고수하며 ‘지구 평면론자’가 돼야 할까.
히브리어와 셈어, 고대 근동 문명 전문가인 저자는 “성경 저자의 문화적 편견을 우리에게 그대로 주입하는 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작 ‘보이지 않는 세계’로 성경 속 초자연적 세계관의 해석법을 논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 성경 저자의 사고방식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핵심은 “전통, 편견, 개인적 문제 또는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지성 세계의 싸움에 성경을 짜 맞추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성경을 성경 되게 하라’는 문장으로 압축한다.
“성경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본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문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 인식의 틀로 성경 본문을 걸러내고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성경답게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을 성경답게 대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는 문자 그대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는 당대의 세계관과 널리 통용되던 상징적 은유를 활용해 ‘진정한 창조자가 누구며 그것이 왜 중요한가’를 역설했다. 성경에 근대 이전의 과학관이 반영된 건 하나님이 성경의 기록을 위해 근대 이전의 사람을 택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내용이 성경에 있지만, 그게 실제라서 실린 게 아니란 이야기다.
“하나님은 성경 저자들이 천체의 운행 방식을 이해하는 현대 과학자가 되길 요구하지 않았다. 그분은 오직 가장 중요한 진리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영으로 이들을 감화시켰을 뿐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전부 예수에 관한 것’이란 명제 역시 다소 문제가 있다. 레위기에 언급된 한센병 진단법이나 사사시대의 영적·사회적 부패는 예수와 직접 관련이 없다. 이런 구절을 읽을 때 중요한 건 “하나님이 성경 안에 해당 본문을 넣기 원한 이유가 뭔지 분별하는 것”이다. “성경에 그 어떤 것도 우연히 기록된 것은 없다”는 걸 받아들일 때, 성경의 대서사를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정치적 담론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정치 중독자’로 일컫는 저자는 성경 해석과 관련한 논쟁적 주제도 다룬다. ‘마르크스주의와 성경신학은 동의어가 아니다’란 주장이 그것이다. 저자는 세간에 유행처럼 퍼진 ‘신약성경이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을 향해 “성경신학에도, 공산주의 정치이론에도 근본적으로 무지하다”고 일갈한다.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교회 교인이 자신의 소유를 공유하는 내용은 마르크스주의가 표방한 이상과 차이가 있다. 초대교회에는 “수입과 사유재산에 대한 재분배를 강제로 요구하는 막강한 권력기관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결정적으로 예수는 평생을 세상 정부와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조해 왔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선입견이란 안경 없이 성경을 읽는 방법이 소개되고, 후반부는 구체적 사례가 소개된다. 출애굽기 속 ‘홍해의 기적’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건넌 바다는 지금의 홍해가 아니라는 것이나 다윗이 둘째 부인 아비가일과 정략결혼을 했다는 것, 아가는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낸 본문이 아니라는 것 등 기독교인의 통념을 깨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어떻게 해야 선입견이란 안경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을까. 저자는 단순히 성경을 읽는 데 그치지 말고, 성경을 진득하게 공부하며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구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해야만 “자기 자신은 물론 신학 서적을 저술한 모든 전문가의 잘못된 생각이 모두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인의 성경 읽기 습관을 꼬집는 ‘뼈 때리는’ 조언이 많지만, 그만큼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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