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개월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경기지표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경기 개선 흐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주식, 채권 시장의 움직임이 지표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금융 부문의 과열 분위기 때문에 실제 경제 상황보다 경기지표가 더 부풀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긍정 신호 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유의해서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통계청은 올해 1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102.7로 전월보다 0.3포인트 올랐다고 최근 밝혔다. 3~6개월 뒤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선행지수가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째 상승한 것이다. 국제 지표도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선행지수(CLI) 또한 한국의 경우 지난 1월 101.82로 전월 대비 0.36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연속 10개월 상승이다. OECD CLI는 6~9개월 뒤 경기를 전망한다.
두 지표를 보면 한국 경제의 앞날은 희망적이다. 그런데 지표를 자세히 뜯어 보면 본격적인 경기 개선으로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통계청 선행지수는 7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이 중 최근 코스피, 장단기금리차, 경제심리지수 항목이 플러스(+)를 기록하며 전체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기계류내수출하지수, 수출입물가비율 등은 마이너스(-)다.
OECD 선행지수도 총 6개 항목 중 주가지수, 장단기금리차 등이 전체 지표 상향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얘기는 경기지표 개선의 상당 부분이 금융 영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실물 경제까지 살아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선행지수가 8개월째 상승한 것은 긍정적 신호가 맞으나 조금 유보적으로 조심스럽게 볼 필요가 있다”며 “금융지표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는 금융과 실물 간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지표 상승 자체에도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다는 점 또한 문제다. 선행지수의 코스피 항목이 오르는 것은 주식 시장 과열과 연관이 있다. 장단기금리차 항목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는 백신, 부양책 등에 따른 국제적인 경기 회복 기대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 국채 물량 급증 등 더 복잡한 배경이 숨어 있다.
최근 국고채 장기물의 금리가 상승하면서 장단기 금리 차이가 커지고 있다. 단기 금리의 경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장기 금리는 5년,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탕에 깔고 있어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이 기대되면 돈을 묻어두기보다 위험자산 등에 투자한다. 자연스레 장기간 돈을 묶어둬야 하는 장기 채권의 경우 더 높은 이자를 줘야 투자자를 끌어모을 수 있어 금리가 상승한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걱정도 있다. 만기까지 미리 정해진 금리를 주기로 약속된 투자인 채권은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값’이 내려가면 가치가 하락해 이 역시 이자 상승을 부른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나랏빚(국채 발행)이 계속 늘면서 수요 대비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점도 채권값 하락, 국고채 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개인·기업의 대출 이자 등 시중 금리 상승 폭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금융이 주도하는 경기 개선 지표를 마냥 반가워할 수 없는 이유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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