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모습을 한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네가 좀 가봐라’ 하시며 절 보내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정미경(53)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자신의 힘만으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20일 만난 정씨는 최근 많은 이를 안타깝게 한 ‘방배동 모자 사건’을 세상에 알린 사회복지사다. 지난 3일 재건축을 앞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김모씨가 숨진 지 약 반 년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김씨의 아들 최모(36)씨는 발달장애가 있어 어머니 사망 후에도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집을 나온 최씨는 몇 달을 동작구 이수역 인근에서 노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엄마는 5월 3일의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며 어법에 어긋나지만, 또박또박 적은 쪽지를 바닥에 놓고 노숙하던 그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처음으로 손을 내민 건 정씨였다.
정씨가 최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6일이다. 정씨의 사무실 앞 복도 의자에 마스크도 없이 한 노숙인이 앉아 있었다. 평소 노숙인을 섬기던 정씨가 보기에 건물 안쪽까지 들어오는 노숙인은 흔치 않았다. 그날 마침 오후에 휴가라 서둘러 일을 마치고 챙기러 갔더니 사라지고 없었다. 밖으로 나가 평소 잘 다니지 않던 곳까지 수소문했지만, 그 노숙인은 찾지 못했다. 발길을 돌리려는 정씨 앞에 최씨가 눈에 들어왔다.
손은 부르텄고 귀와 머리는 한동안 씻지 않은 듯했다. 쓰고 있던 검정 마스크는 낡고 해져 있었다. 최씨는 경계심부터 보였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한 어머니의 당부를 지킨 것이었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밥을 사주겠단 정씨를 따라나선 최씨는 “아무리 기도해도 엄마가 숨을 안 쉬고 살아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기도하면 하늘에서 다 듣는다며 천국에 계신 어머니가 밥 한 끼 사 먹이라고 보내신 거라고 얘기해 주니 놀라며 눈물을 글썽이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질문을 거듭한 끝에 “어머니 몸이 거기(어머니 방)에 있다”는 답을 들었다. 첫 만남 때부터 최씨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성우 사당지구대 경위와 동작구청 김재영 주임에게 알렸다. 낡은 이불에 덮여 있던 김씨의 시신은 그렇게 처음 발견됐고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대한 통렬한 자성을 불러왔다.
정씨가 노숙인을 섬기겠다고 다짐한 건 2014년이다. 희귀난치병을 앓던 아들의 치료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과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닌 지 6개월 만에 아들의 상태가 좋아졌다. 대학에도 진학했다.
정씨는 “갚을 수 없는 하나님 은혜를 알게 됐다”면서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2장 3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란 말씀과 함께 사회복지사, 특히 노숙인을 향한 마음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하나님뿐”이라며 “복지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겐 현실적 문제뿐 아니라 영적인 부분까지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교인으로 등록된 이들만 섬기는 게 아니라 주변 지역사회로 스며들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자립해 정착할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 끼 식사를 섬겨주는 것도 소중하다. 하지만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사회복지사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도와주실 것”이라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해준 것이 하나님께 해준 것이라는 말씀처럼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주님 안에서 천국 백성들로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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