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에 모여 맘껏 찬양을 바치고, 친교의 식탁에 둘러앉아 으밀아밀 이야기 나누던 때가 언제 회복될까.…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재난은 인간의 통제를 거부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지금 얼마나 큰 위기 가운데 있는지를 전 세계인에게 일깨워줬다. 비상 나팔은 이미 울렸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가 코로나19 시대를 관조하며 쓴 ‘모호한 삶 앞에서’(비아토르)에는 유달리 경고음을 나타내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비상 나팔’과 ‘조종’(弔鐘), 구약성경에 언급된 양뿔 나팔 ‘쇼파르’도 등장한다. 코로나19가 교회와 세상에 울린 경종이나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은 코로나19가 우리나라를 휩쓴 올해 초부터 지난 10월까지 저자가 전한 교회 설교를 주제별로 추린 것이다. 글에는 대면 예배의 온라인 전환과 사회적 거리두기, 기후재난과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등 이제는 일상이 된 코로나 시대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제 귀에는 환청처럼 조종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충격 때문입니다.” 저자가 반사회적 행태를 보인 일부 교회와 교인을 보며 한 말이다. “하나님 이름이 우리로 인해 모욕당하는 현실”에 망연자실하던 저자는 문득 이런 현실에 목회자인 자신의 책임이 없는지 돌아본다. “내가 부는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경고의 나팔 대신 사람의 흥을 돋우기 위해 나팔을 불지는 않았나. 악을 악이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게 한 건 아닌가.” 성도에게도 “몽매함에 빠진 사람을 보고 혀를 차지 말고,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라”며 스스로 돌아보길 권한다.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고, 그리스도인조차 교회에 염증을 느끼는 서글픈 현실에서도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환대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저자는 이를 위해 교회가 취약계층을 보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는 ‘거룩한 과제’에 매진할 것을 주문한다.
선의와 친절, 명랑함으로 주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이 되자는 당부도 한다. 신약성경에서 ‘생기를 불어넣다’는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아나파우오’는 ‘새롭게 되다’ ‘기운을 차리게 하다’ ‘용기를 북돋는다’ 등 여러 의미로 쓰인다. 저자는 이 해석을 반영해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을 “다른 이를 기운 차리게 하고 용기를 북돋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그리스도인이 이런 자세로 팬데믹 시대 “누군가에게 고향 같은 존재가 되자”고 말한다. 죄와 무기력, 절망과 슬픔을 떨쳐내도록 힘을 공급하는 성령이 그리스도인에게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환경 역시 그리스도인이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대상이다. 저자는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창조세계를 보며 슬퍼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 그러면서 “대규모 절멸을 향해 가는 인류의 수레바퀴를 되돌린 순 없다고 해도, 그 몰락의 과정에 연료를 공급하는 일은 피하자”고 호소한다. 비닐과 플라스틱 줄이기 등 환경 보호를 위한 실천적 조언도 한다.
인생과 자연을 향한 코로나19의 경고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로 끝을 맺는다. 외로이 십자가의 길을 걸은 예수는 ‘일어나 가자’며 작금의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저자가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시려는 것일까요.… 지금 설 땅을 잃고 절망의 심연에 빠져드는 이들에게 설 땅이 되어주기 위해 가자 하십니다. 편협한 믿음에 갇힌 사람들, 광신적 믿음을 참된 믿음인 줄 알고 사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참 아름다움을 보여주러 함께 가자 하십니다.… 우리는 말을 탄 정복자가 아닙니다. 나귀를 탄 겸허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저자 특유의 담박한 필치 덕분에 설교집인데도 수필집처럼 느껴진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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