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얀 후스와 민중들의 종교개혁 외침 들리는 듯

[세계의 광장을 가다] ③ 중세의 낭만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광장)

프라하 옛 시청사 첨탑에 올라 내려다본 구시가지 광장(위 사진). 가운데 얀 후스 동상과 고딕 양식의 틴 성당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언덕에 있는 프라하성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주변 건축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구시가지 광장의 야경(아래 사진).

체코의 수도 프라하 구(舊)시가지 광장은 중세부터 시작된 이 도시의 10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1세기에 이 광장이 시장으로 처음 조성됐다는 기록이 있다. 중세 도시의 광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세는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대여서 교회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했다. 도시의 중심인 광장 역시 교회 마당과 일상의 무대인 시장의 기능이 컸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은 중세시대 광장의 전형이다. 왕족과 귀족이 블타바강 건너편 프라하성의 성비투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서민들은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틴 성당에서 기도하고, 바로 앞 광장에 나와 물건을 사고팔았을 것이다. 지금도 매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시즌에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큰 시장이 열린다.

프라하는 한때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다. 프라하 전성기를 이끈 카를 4세 황제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다리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인 카를교가 탄생했다. 카를교를 지나 시내 방향으로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 거리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시가지 광장을 만나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2월 11일 프라하를 찾았을 때 구시가지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이드가 구시가지 광장의 역사와 주변 건물들의 특징을 소개하면 관광객들은 연방 탄성을 터뜨리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광장은 건축물의 향연이다. 구시가지 광장은 주변 건물이 로마네스크에서부터 초기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 ‘건축 박물관’으로 불린다. 광장 그 자체는 비어 있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비어 있는 용기(容器)로서 광장은 도시 건축의 매우 중요한 공간이 된다. 광장은 건축을 매개로 하여 각 도시가 ‘가까이 그리고 멀리에서’ 미적 가치를 구현해온 결과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광장을 ‘도시의 거대한 예술품’으로 볼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고딕 양식 건축이 유행했다. 고딕 양식은 뾰족한 첨탑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높은 건물, 플라잉 버트레스가 특징이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건축물 중 고딕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틴 성당이다. ‘틴 광장 앞의 성모 마리아 교회’가 정식 이름인데 성당 뒤에 있는 틴 광장의 이름을 따서 틴 성당이라고 부른다. 틴 성당에는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80m 높이의 두 개의 종탑이 있다. 이 성당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35년인데 초기의 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틴 광장에서 장사하던 수많은 외국 상인이 틴 성당을 드나들었고 이 성당에 헌금하면 장사와 여행길에 축복이 내려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엄청난 헌금이 모였다. 틴 성당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14세기에 거대한 고딕 양식 성당으로 거듭났다.

광장은 건축물 외에도 지역 주민들의 활동과 역사적 사건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건축물이 광장을 구성하는 ‘보이는 요소’라면 그곳에서 펼쳐지는 시민들의 활동과 역사적 사건은 광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요소’다. 각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과 동시대 사람들의 활동이 합쳐질 때 비로소 광장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구시가지 광장은 15세기 초 프라하를 비롯한 보헤미아 전역이 종교개혁으로 인한 혼란에 휩싸이면서 다시 주목받게 된다. 종교 개혁가 얀 후스가 로마에서 화형당하고, 그를 추종하던 민중들과 신교 귀족들이 연합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로마제국과 구교 귀족들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틴 성당이 신교의 중요한 본거지가 됐다. 현재 구시가지 광장의 얀 후스 동상은 1915년 얀 후스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얀 후스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틴 성당이다. 얀 후스 동상은 진정한 신앙과 양심으로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옛 시청사에 내걸린 천문시계는 구시가지 광장의 명물로, 그 주변에는 매시 정각 시계 쇼를 보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다시 건축물로 돌아가 보자. 광장 한편의 옛 시청사 첨탑은 고딕 양식이고, 지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돼 있다. 옛 시청사에 내걸린 천문시계는 구시가지 광장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천문시계 주변은 시계 쇼를 보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매시 정각에 해골 인형이 종을 치면 15명의 사도상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 후 마지막에 수탉이 울고 시보를 알리는 시계 쇼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시계탑에는 천문시계를 만든 장인의 슬픈 야사가 얽혀 있다. 1490년 성장기를 맞던 프라하 시의회에서 도시의 상징물로 정교한 시계탑을 만들기로 하고, ‘얀 루제’라는 장인에게 천문시계를 완성하도록 했다. 얀 루제가 고안한 천문시계는 대단히 아름답고 훌륭해 그 소문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시의회는 얀 루제가 다른 도시에 더 뛰어난 천문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다.

시계탑에 올라 구시가지 광장을 내려다보니 광장을 둘러싼 건축물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언덕에 있는 프라하성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구시가지 광장은 중세 시대 프라하의 모든 길이 모이는 종착지였다. 그래서 광장은 도시의 심장과도 같았다.

중세시대 광장은 행정과 종교, 시장 등 도시의 일상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그래서 광장 주변은 시청과 궁전, 교회 건물이 둘러싸고 광장 한복판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오래된 도시의 중심 광장에 서 있으면 광장 구성과 주변 건축물의 조화, 공동체를 위한 기능에 감탄하게 된다. 광장 주변 성당이나 시계탑, 시청, 극장들에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광장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며 사회적으로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인생을 즐길 줄 알았던 보헤미안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했던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은 이제 낭만적인 유럽의 명소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 광화문광장도 중세 시대부터 조선의 도읍지 한양의 중심공간으로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경복궁 앞 월대를 복원하고 의정부 터를 발굴하는 등 일제에 의해 철저히 훼손된 역사성을 회복하고, 물과 숲을 아우르는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걷고 쉬기 편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프라하=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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