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휴교령을 내린 바로 다음 날인 18일 미국 측에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협조를 얻으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측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직접 만난 뒤 “전두환과 동료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고 평가했다.
외교부는 15일 5·18민주화운동 관련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건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모두 43건으로 140쪽 분량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전후 미 국무부가 만든 문건들이다. 과거 일부 내용이 공개됐던 이들 문건이 완전히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문건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5월 18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면담한 뒤 본국에 보고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 사령관은 학생들의 시위가 통제되지 않으면 한국도 베트남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보고했다. 신군부가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미국 측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공산주의 우려’를 명분으로 내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 사령관을 만나기 전날인 17일 최광수 당시 최규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 면담 보고에 따르면 최 실장은 “최규하정부가 군부에 완전히 포획돼 있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12·12 군사반란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면담한 내용도 공개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12 군사반란을 ‘Young Turks’(젊은 투르크)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1979년 12월 14일 면담 내용에는 “전 사령관은 자신의 행동이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다”고 설명돼 있다. 또한 전 사령관이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개입하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가벼운 형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경고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지지자가 향후 몇 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전 사령관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향후 몇 주, 몇 달간 매우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외교 경로를 통해 미 국무부에 문건 공개를 요청했으며 6개월 만인 지난 11일 미국 측은 일부 문건의 사본을 전달했다. 이들 문건에는 5·18 당시 계엄군의 발포 명령에 대한 책임 소재 여부 등을 가릴 수 있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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