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2015년 9월 26일 메르스 42번째 환자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 제목은 ‘당국, 메르스 첫 3차 감염 환자 숨겼다’였다. 42번째 환자로 발표된 A씨(당시 54세 여성)가 사실은 14번째 환자이자 첫 3차 감염 사례였는데 보건 당국이 이를 숨기고 있다가 1주일 뒤 42번째로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는 내용이다. 메르스 첫 환자는 그해 5월 20일 발생했고, A씨는 5월 29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안타깝게도 6월 17일 사망했다. 감사원은 이듬해 1월 ‘메르스 예방 및 대응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보건 당국이 거짓 발표를 했다’며 나무랐다.
42번째 환자 A씨에 관한 내 취재는 거기까지였다. 3년여 뒤 2018년 다른 언론의 보도를 보니 A씨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소송 내용을 보니 과거에 취재를 더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는 첫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됐다. 보건 당국이 처음에 이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탓에 자신이 있는 병동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는지 까맣게 몰랐다. 지시에 따라 병원 8층에서 7층으로 이동해 입원했을 뿐인데 감염이 됐고 사망에 이르렀다. 유족 입장에서는 첫 3차 감염을 숨긴 사실보다 처음부터 상황을 알리고 A씨를 좀 더 철저하게 격리하지 않은 사실이 더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메르스 42번째 환자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코로나 관련 정부 비판하는 건 한국 언론밖에 없다’는 말과 글이 많이 보여서다. 다른 나라 정부와 외신은 모두 한국의 방역 조치를 칭찬하는데 한국 언론만 비판하니 언론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번 사태에서 보건 당국이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브리핑하고 확진자 발생과 감염 상황을 알리고 있다. 역학조사는 기민해 보이고 상당수 감염 고리를 제때 끊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상세한 브리핑으로 국민의 불안을 가라앉혀 주고 있다.
보건 당국의 투명성과 신속한 대처는 메르스 사태의 학습 효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메르스 사태 초기 병원 이름 공개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당국은 ‘과도한 걱정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공개를 머뭇거렸다. 언론이 공개 결정을 끌어냈다. 이런 과거 덕택에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동선 공개와 같은 본질이 아닌 문제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정 본부장과 권 원장은 메르스 사태에서도 브리핑을 맡았다. 언론과 신경전을 겪으면서 투명한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가 다 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감염병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당국은 대구·경북에서 중증 환자를 분류하고 병상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 결과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유족 입장에서는 외신의 방역 칭찬이 전혀 와 닿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 대란 문제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보건 당국은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이 쓰라고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은 원칙 없이 마스크를 쓰고 공개 행사에 참석했다. 국민의 혼란과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다른 의도가 있는 언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무작정 헐뜯기 위해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일수록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언론도 본연의 일인 감시와 비판을 잘하면 된다. 그래야 다음 감염병이 왔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나름 아무리 열심히 감시한다고 해도 지나고 나면 놓친 게 꼭 있었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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