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직업은 ‘목수’, 가구를 만드는 목수다.
사람들은 나의 직업이 가구라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내가 운영하는 목수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역시 ‘물건’을 만드는 방법(목공)을 배우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게서 빨리 ‘목공’을 배워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한다. 미안하지만, 모두 틀렸다.
목수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직업목수가 만드는 것은 ‘상품’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은 커다란 함의를 가진다. 물건은 ‘사용가치’다. ‘의자에 앉아 쉬었다’고 할 때의 의자는 ‘앉는다’라는 ‘사용가치’를 가진다. 이때까지 의자는 물건이다. 하지만 ‘의자를 팔아 100만원짜리 휴대전화를 샀다’고 할 때, 의자는 ‘교환가치’다. 이제 의자는 물건이 아니라 상품이 된다.
‘상품’은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탄생했다. 자본주의사회 이전에도 물건은 교환되었으나 그 교환은 실재 가치에 근거한 교환이었다. 교환되었으나 상품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교환가치’는 상품의 ‘실재 내용(재료, 기술, 노동력, 기획과 판매노동 등)’과는 상관이 없다. 화려한 매장이나 유명 광고모델이 교환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소위 명품 브랜드의 상품이라면 실재 내용보다 수십 배 높은 가격으로 팔려나간다. 사회는 ‘부가가치’라는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한다. 21세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은 ‘이미지’라는 숙주를 만나 더욱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린다. ‘이미지’가 곧 ‘교환가치’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철학자 이정우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는 곧 개념이 죽은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를 천천히 그리고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개념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에서 ‘개념’을 ‘좋은 물건’이라는 단어로 교체하고 싶다(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는 곧 ‘좋은 물건’이 죽은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천천히, 그리고 깊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좋은 물건’이다).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 독일 출신의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계명’에서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시선을 끌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라고 정의한다. 이미지의 속성은 ‘불필요한 시선’을 끌고, ‘물건의 실재 내용을 과장’하는 것이다. 이미지가 곧 가치인 사회에서 상품 생산자는 ‘이미지’를 바라보며 물건을 만들고, 소비자는 물건이 아닌 ‘이미지’를 욕망한다. ‘인격’은 사라지고, ‘인격화’한 상품이 교환되는 것이다. 교환의 주인은 인격이 아닌 ‘상품’이 된다. 더 이상 상품에는 인간의 개입 여지가 없다. 상품은 인간을, 심지어 자본주의마저도 조정한다.
사회문화 비평가인 김규항은 신작 ‘혁명노트’에서 스마트폰으로 연결되는 사회에 대해 “나에 대해,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연결은 인간의 연결이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인격화한 상품만이 교환되는 사회는 인격의 연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간은 상품의 범람 속에서 더욱 고독해진다.
해법은 무엇인가? 리처드 세넷을 비롯한 영미의 사회학자들은 ‘공예·장인’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다. 공예는 상품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작업이다. 공예는 상품에 달라붙은 물신의 요소들을 제거한다. 교환의 주인이 ‘물신(物神)’이 아니라 인격이 되도록 한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용도가 폐기되었던 공예가 소환된 것은 공예가 가진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공예가 이 가능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공예 역시 상품의 ‘부가가치’만을 맹목하는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로 전락하며 다시 폐기될 수도 있다.
목수는 상품을 만드는 직업이다. 하지만 상품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실천이 없다면 목수는 완전한 직업이 될 수 없다. 공예가라는 직업이 설 자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극단화된 ‘물신화’의 반대편이기 때문이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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