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홍보는 절반의 진실”
대기 시간, 공제 비용 다 포함 안돼
라이더 동행 르포
죽기 살기로 달려야 월 400만원
“개가 웃을 듯 ㅋㅋ.”
배달의 민족 라이더가 지난해 12월 주 평균 41시간 일하고 400만원대 소득을 올렸다는 우아한 형제들 보도자료가 나오자 라이더 채팅방에서 나온 반응이다. ‘미래직업군 배민 라이더스ㅋㅋ’ ‘꿈의 직업’ ‘20대가 취업하고 싶은 회사 1위 배민 라이더스’라는 자조도 이어졌다. 돈을 지급한 회사가 통계를 바탕으로 낸 수치에 대해 왜 라이더들은 코웃음을 치며 ‘황당하다’는 답을 냈을까.
배민이 홍보한 ‘주당 41시간’은 라이더가 운행을 시작해 배달을 완료하기까지 시간만 더한 수치다. 온종일 거리에 있었어도 ‘공 친’ 시간은 빠져 배민 집계로는 6~7시간 정도만 일한 거로 잡히는 식이다.
400만원대 소득엔 비용이 모두 빠져 있다. 베테랑 라이더 김호영(가명·41)씨의 정산내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지난해 11월 27일부터 12월 31일까지 35일(5주)간 올린 배달료 소득은 474만1900원이다. 이 기간 딱 사흘 쉬고 981건의 콜을 수행했다. 운행 거리만 944.9㎞다. 그렇게 번 돈이 첫 주 128만3500원, 94만4700원, 88만원, 76만9700원, 86만4000원이다.
이 돈은 {(기본 배달료 3000원+프로모션비α)×배달 건수}를 단순 계산한 금액이다. 실제 손에 쥐는 건 그보다 훨씬 적다. 배민은 여기서 건당 200원의 수수료, 소득세 3%와 주민세 0.3%, 주당 산재보험료 3200원을 빼고 441만4760원만 줬다.
이 돈도 순수익이 아니다. 라이더 개인이 알아서 비용 처리해야 할 게 남아 있다. 호영씨는 기름값과 식비 등으로 하루 2만원 정도는 나간다고 했다. 32일간 일했으니 대략 64만원 정도가 빠진다. 수익은 377만원 수준. 4월부터는 배민에 오토바이 렌털료로 매주 8만33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5주를 계산하면 41만6500원이다. 수익은 다시 335만8260원으로 쪼그라든다.
400만원대 수익을 올리려면 얼마나 체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호영씨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오전 8시40분 출근
지난 4일 오전 8시40분, 2~3층짜리 빌라가 빼곡히 들어선 서울 합정동 골목길에 배기량 100㏄짜리 민트색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울렸다. 두꺼운 방한바지와 패딩점퍼를 2겹으로 껴입은 호영씨가 헬멧을 썼다. 서울 체감온도는 영하 5도였다.
“사고 나지 말자, 사고 나지 말자, 사고 나지 말자.” 그는 기도문처럼 매일 세 번 이 말을 한 뒤 일을 시작한다.
처음 향한 곳은 배민 관제센터 맞은편 편의점이다. 집 근처에는 음식점이 많지 않아 ‘콜(배달주문)’이 잘 뜨지 않는다. 그곳 편의점 반경 1㎞ 내에는 업장이 많아 명당으로 꼽힌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노상 테이블에 앉아 영업개시 시점인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 라이더들도 속속 ‘집결지’로 모여들었다. 한 손엔 배민 배달기사 애플리케이션인 ‘브로스’를 띄워둔 휴대전화를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론 핫팩 2개를 뜯어 연신 흔들어댔다.
이날 목표는 30콜이다. 부업 때문에 오후 4시까지만 일할 수 있어 적게 잡았다. 평소는 오후 8~9시까지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50콜이 목표다. 그렇게 주6일 일해야 300콜이다. 모자라면 주7일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달에도 호영씨는 설날 휴일이었던 3일을 빼곤 모두 일했다. 주당 300콜을 하면 세금, 수수료, 보험료 등 대략 10%가 비용으로 빠지고 수익으로 약 100만원이 떨어진다.
라이더 전투 워밍업
오전 9시, 배민 앱이 열리자 콜이 하나둘씩 뜨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커피숍에서 아침용 샌드위치와 커피를 직장으로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라면, 빵, 소시지, 음료수, 기저귀 등 생필품을 마트에서 배달해 달라는 주문도 더러 있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주소만 봐도 1초 안에 위치와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 휴대전화 화면 위로 라이더 손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그래서 라이더들 방한장갑은 엄지와 검지 끝부분이 모두 잘려져 있다.
15분 만에 첫 콜을 잡았다. 거리가 멀고, 다른 주문을 ‘묶어 달리기’ 어려운 콜 6개를 거른 뒤였다. 첫 주문은 마트 배달이다. 핫팩을 핸들 토시에 던져 넣고는 휴대전화를 오토바이에 설치된 충전용 거치대에 붙였다.
오토바이를 몰면서도 시선은 종종 휴대전화를 향했다. 이 바닥에서 한 번에 주문 하나만 배송하면 하수다. 비슷한 동선의 주문 3~4개를 묶어서 한 번에 배달해야 ‘콜 좀 친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도중에 콜 3개를 추가로 잡아 먼저 수행을 완료했다. 첫 콜은 4번째 배달지가 됐다. 마지막 배송지 도착 전부터 호영씨 눈은 줄곧 휴대전화를 향했다. 이 배달을 완료한 뒤 ‘물고 달릴’ 다른 콜을 찾는 것이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 쳐다보고, 사람이나 차가 튀어나올까 두리번거리고, 찬바람 맞고…. 일 끝나면 아주 눈이 빠질 듯 아파요.” 그래서 눈에 좋다는 야관문 차가 담긴 보온병을 오토바이 배달통에 넣고 다닌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4층짜리 빌딩으로 뛰어 들어가 계단을 2칸씩 성큼성큼 뛰어올라갔다. 3층에 위치한 주택 현관 앞에 물건을 내려놓고 인증샷을 찍은 뒤 다시 1층으로 뛰어내려왔다. 2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9시52분. 잠시 담배를 피우려 헬멧을 벗자 머리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묶고, 물어서 하루 12시간을 뛰고, 그런 하루를 주6일씩 지속해야 먹고 살죠.”
오전 11시를 지나면서 호영씨 휴대전화에 ‘추천’ 알림음이 쉬지 않고 울리기 시작했다. 1㎞ 내 업장에서 나온 ‘꿀 콜’이다. 지금부터 오후 1시까지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식사시간대 7~8개 정도 콜을 찍어줘야 오후 비수기를 만회할 수 있다. 최단 거리 운행을 위해 골목 사이를 내달리느라 그를 놓치기 일쑤였다.
점심시간 다가오자 긴장
대목에는 생리현상을 처리하는 시간도 아껴야 한다. 주 활동지역인 합정동 일대 상가 화장실 비밀번호를 줄줄 외고 있었다. ‘○○○ 상가 화장실은 잠겨 있지 않고, △△△아파트 상가 화장실 비밀번호는 ****누른 뒤 별표….’ 비밀번호가 바뀌면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이 동료 라이더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이를 전파한다고 한다. 호영씨는 화장실에서도 휴대전화를 소변기 위에 올려둔 채 묶을 수 있는 콜이 뜨는지 확인했다. 왼손 검지는 바로바로 콜을 잡을 수 있게 화면 위에 올려 둔 채였다.
오후 1시30분, 직장인들 점심시간이 끝나자 콜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직전 배달지 망원시장 입구에서 한숨을 돌렸다. 시장 입구 한의원을 가리키며 “2주에 한 번씩 추나치료를 받으러 가는 곳”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헬멧을 쓴 채 구부정한 자세로 오토바이를 몰다 보니 허리와 목 디스크를 달고 사는 라이더가 많다고 한다. 핸들(스로틀)을 당기는 오른쪽 손목은 늘 저리고, 손바닥엔 몇 차례 물집이 잡혔다가 허연 굳은살이 박였다.
“처음엔 14시간씩 일하고 집에 가면 손이 덜덜 떨려서 김치 쪼가리 하나 젓가락으로 못 잡을 정도였어요.”
배민 개인계정에 지금까지 17건의 배달을 수행했고, 16㎞를 운행했으며, 6만원을 벌었다고 떴다. 건당 1㎞ 이하 단타를 탔으니 이날은 ‘꿀 콜’만 잘 잡은 편이다. 다만 오늘 목표를 채우기는 글렀다. 이 시간부터 오후 4시까지는 배달주문이 급격히 줄어드는 구간이다.
호영씨는 보통 이 시간에 동료 기사들과 식사를 하는데 이날은 걸렀다. 보통은 합정동 일대 식당을 찾는다. ‘골목 맛집’을 속속 알고 있지만 식당 선택 조건은 ‘빨리 나올 것, 양이 많을 것’ 2개뿐이다. 그래서 주로 찾는 음식이 국밥이라고 했다. 말아먹을 수 있으니 반찬 때문에 젓가락질할 필요가 없다.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나오는 데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라이더들은 밥 먹는 순간에도 주문을 잡는다. 그래서 국밥도 사치라는 라이더도 있었다. “국밥은 뜨거워서 빨리 먹을 수 없다. 분식집 김밥이 제일 낫다. 금방 나오고, 뜨겁지도 않고, 밥 먹다가 콜이 잡히면 먹던 거 들고 갈 수도 있다.”(배민 라이더 김홍식씨·가명·47)
호영씨도 배달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편의점에서 1200원짜리 핫바나 삼각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라이더들이 ‘기사식당’처럼 여기는 곳도 있다. 오민복(가명·29)씨는 신원동 사거리 한 국숫집을 자주 찾는다. 칼국수 한 그릇에 3500원을 받는데, 빨리 나오고 양도 많다. 식당에 들어가면 “제일 빨리되는 걸로 주세요”가 주문이다 보니, 자주 오는 라이더가 앉으면 국숫집 사장은 묻지도 않고 칼국수를 내준다.
늘 목표미달, 그래서 부업
호영씨는 오후 4시까지 일했지만 콜을 20건도 채우지 못했다. 장시간 일하면 돈은 벌리는데 그게 일정치가 않다. 1월 첫주부터 매주 69만7830원, 59만1750원, 59만6120원, 23만2200원을 벌었다. 주당 100만원 수익을 내겠다는 목표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수익도 들쑥날쑥했다.
“주문량이 항상 일정치도 않고, 신규 라이더들이 많아지면서 콜 경쟁도 세졌다. 예전만큼 벌기가 힘들어졌다.”
호영씨네 세 가족은 2억원짜리 빌라 전세에 산다. 1억원 대출 이자가 24만원이다. 3년 전 홍대에 학원을 차렸었는데 영업이 잘 안 돼 그때 끌어 쓴 돈 4억원의 원리금 190만원도 고정비다. 의류비, 식비, 통신비,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각종 생활비를 내면 모아둘 돈이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지출을 피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아예 쓰지 않는다. 호영씨는 “밤에 일 끝나면 동료 라이더들이랑 소주 한잔씩 하는 게 낙이었는데 수입이 적은 달엔 그런 것부터 하나씩 줄여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고는 치명적이다. 병원비도 문제지만 그동안 벌이가 없는 상황이 더 문제다. 며칠이라도 쉬면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 배달 일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사고가 나서 새끼손가락이 골절됐을 때 그는 다음 날 보철물 하나를 댄 채 핸들을 당겼다.
불안정한 수입을 보완하려고 이달부터 매주 화요일 클럽 경호일을 하러 나간다. 대학 때까지 태권도를 전공한 터라 배달일을 하기 전에도 비정기적으로 이 일을 했었다. 밤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취객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렇게 일하면 일당 10만원이 나온다. 한 달 40만원이라는 고정 수입이 추가로 생겨서 꼭 필요한 일이다.
오후 4시가 돼서야 호영씨는 집 앞 대문에 오토바이를 대고 헬멧을 벗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민 측에서 지급한 휴대용 손세정제를 짜서 양손을 구석구석 닦았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자 안에서 “아빠” 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늦은 첫 끼를 먹었다. 잠시 눈을 붙인 뒤 두 번째 일터로 향했다.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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