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병 문제와 관련해 최선은 하지 않는 것일 게다. 하지만 부득이하다면 어떻게 인적·물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반대급부를 얼마나 확보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공동 방위 압박에 직면한 정부의 고민도 이 부분 어딘가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공동 방위 대신에 독자 파병을 결정한 일본처럼 정부가 독자 파병을 고려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있는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카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시기다. 일본은 지난달 파병을 결정하고 지난 11일 260명 규모의 해상자위대를 출발시켰지만 우리 입장에선 서두를 필요가 없다. 급변하는 미·이란 갈등 양상과 이란 내부 상황을 지켜보며 효과적인 시기를 선택해야 한다.
이란은 지구상 유일의 신정(神政)일치 국가다. 국민이 뽑는 대통령이 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신의 대리인이라는 ‘최고지도자’가 행사한다. 이란 헌법은 최고지도자가 국가원수와 최고 종교지도자, 군 통수권자, 사법부·입법부·행정부의 상징적 수장을 겸하도록 하고 있다.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최종 임명하는 것은 물론 의회(3분의 2) 동의를 얻으면 해임할 수도 있다. 대법원장과 국영방송 사장, 정규군과 혁명수비대의 수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한다.
1979년 이후 반미를 공식화하고 미국에 저항한 이란에 대해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지칭했다. 반미를 내세운 정권, 종신직이면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지도자, 그리고 경제 제재까지. 이란은 북한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란에는 북한과 퍽 다른 게 있다. 그것은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국민 의사가 반영되는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이다. 4년 전인 2016년 2월 26일 국회의원 선거와 전문가 의회 선거에서 이란 국민은 온건 개혁파를 대거 당선시켰다.
이란에서 선거에 출마하려면 체제 단속이 목표인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2016년 총선 후보 등록자의 절반, 전문가 의회 후보 등록자의 80% 이상이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란 혁명의 아버지이자 초대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도 탈락했다. 그가 개혁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국민은 온건 개혁파에게 표를 던졌다.
선거 결과는 도시 중산층과 청년, 여성 유권자의 지지 덕분으로 해석됐다. 서방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막히고 경제난이 심해지자 서방과의 협상에 힘을 싣는 개혁파에게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제재로 인해 서민들은 고달픈데 혁명 기득권층만 부를 누리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이란에선 다음 달 21일에 4년 만의 총선이 예정돼 있다. 최고지도자와 체제 수호 세력에게는 큰 부담이다. 지난해 11월부터 확산됐던 반정부·반군부 시위가 한때 가라앉았다가 혁명수비대의 민항기 격추 사건으로 다시 불붙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온건 개혁파가 더 힘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핵합의 복귀 혹은 새로운 핵합의를 위한 협상 테이블이 조성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구의 강도가 완화되거나 파병에 내재된 위험성 자체가 줄어들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란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통제되지 않는 무장세력이나 강경 군부 일각의 일탈 가능성은 여전하다. 실제 이란의 체제 수호 세력은 2015년 7월 핵합의 타결 후에도 2016년 총선 전까지 탄도미사일 실험을 3차례나 강행해 긴장을 조성하려 했던 전례가 있다. 파병 결정 전 이란의 국내 정국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이유다.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지만 상황이 지금보다 엄중하게 바뀐다면 우리가 파병을 통해 얻을 반대급부의 크기도 지금보다는 더 키워야 한다.
정승훈 국제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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