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착한 소영이’ 꼬리표에 숨어 살다… 부활 믿고 진정한 자유 찾게 돼

Է:2020-01-0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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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한마음교회 간증 스토리


딸 다섯 중 넷째인 나는, ‘여기 가만히 있어라!’ 하면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만 있던 순동이로 자랐다. 언니들과 동생 틈에서 매일 주눅 들어 지냈다. 언니들은 놀면서 내게 막내를 보라고 했고, 어린 나는 우는 동생을 업고 동네를 돌면서 달래곤 했다. 어느 새 ‘착하다’는 꼬리표가 내게 붙어 다녔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사가 어려워 직원 급여가 밀릴 때,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든 월급을 챙겼지만 아무 말도 못한 나는 5만원, 10만원, 용돈처럼 받으며 1년을 견디었다. ‘소영씨가 착하니깐 이렇게 이해해주지!’ 하며 조금만 참아달라는 사장의 말에 아무 말도 못했다. ‘착하니깐, 착하잖아, 착해서’ 라는 말은 그렇게 내 삶을 옭아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지만, ‘착하다’는 말은 내 삶의 무거운 짐이었고 쌓아올린 신앙도 무너졌다. 탈출구가 없었던 나는 ‘하나님’하던 손에 술잔을 잡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러도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사가 딱 내 마음이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5년이 지날 때, 친구를 통해 한마음교회 작은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일꾼 언니가 “소영아! 예수님이 누구시니?” 물었다. ‘아니, 이 언니까지 나를 뭘로 보는거야?’ 했지만 실은 예수님이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말에 너무 놀랐다. 백과사전을 찾아 직접 사실로 확인하고 요한복음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지만 마음에는 도무지 닿지 않았다. 어느 날, 요한복음 4장의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생생하게 보이며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사셨다는 것이 정확히 비춰졌다.

그러나 부활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활이 낯설어지며 혼란에 빠졌다. ‘하나님! 천국도, 지옥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을 확증할 수 있도록 저 좀 도와주세요.’하며 간절히 엎드리며 사도행전을 읽었다.

어느 날, 목숨을 걸고 큰 확신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딱 보였다. ‘아!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로 봤구나! 예수님은 진짜 부활하셨구나!’ 예수님이 선명해지자 마음이 떨려왔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나의 진짜 주인이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구나!’ 바로 탄식이 나왔다. 감각 없이 착함을 내세우며 예수님을 배척하고, 마음중심에서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는 죄인이었다. 나는 바로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나 이제 살았구나! 나 천국이구나!’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착한 소영이’ 라는 꼬리표 때문에 더 착한 행실로 꾸역꾸역 나를 포장해 왔던 나는 즉시 가족들에게 침을 튀기며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 쉴 새 없이 ‘예수님’, ‘부활’ 이 나오니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은 무척 당황했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믿는다’고 하셨던 어머니도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셨다. 복음을 듣고 싶다는 먼 곳의 지인에게 시외버스를 타고 달려간 적이 있다. 그 분은 요한복음 16:9의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고 곧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5개월간 월급도 받지 못했지만, 문을 닫고 낙심하는 사장님을 위해 기도했고, 기독교에 반감이 심한 자매를 만나 복음을 전하여 지금은 귀한 사명자로 세워져 가정을 예배처소로 오픈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는 오직 복음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해결이 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착하다’는 말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주님의 말씀만 듣고 싶다. 착한 사람으로 영혼들을 섬겼던 바나바처럼 영혼들을 섬기며 주와 복음을 위해 기쁘게 달려가리라.

김소영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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