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한·미가 들어주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발판이 마련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1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 참석을 계기로 만나 이달 중 예정됐던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전격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에스퍼 장관은 회동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긴밀한 협의와 신중한 검토를 거쳐 저와 정 장관은 이달 계획된 연합 공중훈련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미는 이번 조치가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위한 결정임을 분명히 했다. 에스퍼 장관은 “외교적 노력과 평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선의의 조치”라며 “북한도 (군사)연습과 훈련, (미사일 발사)시험을 행하는 결정에 있어 이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조건이나 주저함 없이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도 “북한이 반드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이번 결정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북·미 대화를 이유로 지난해 대규모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가 유예된 데 이어 올해 연합 공중훈련도 연기된 것이다. 안보를 소홀히 하면서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연합훈련 연기에 따른 한반도 안보 공백 우려에 관해서는 “한반도 연합전력에 높은 수준의 준비태세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의 연합훈련 연기 결정에 북한은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이 다가오면서 초조함을 드러냈던 북한 입장에서 이번 결정은 협상 복귀의 명분으로서 매우 좋은 신호”라며 “즉각적이고 공개적으로 환영 의사를 밝히기보다는 물밑 접촉을 통해 대화 재개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계획을 강력 비난해 왔다. 그러다 에스퍼 장관이 연합훈련 조정 의사를 밝힌 지난 14일에는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 측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같은 날 북·미 실무협상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 측으로부터 다음 달 다시 협상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면 임의의 장소와 임의의 시간에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이 훈련 중단 요구를 들어준 것에 고무된 북한이 더 큰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최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된 것과 관련해 17일 담화문을 내고 “조·미(북·미) 대화가 물망에 오르고 있는 때에 미국이 우리 제도를 전복하려는 개꿈을 꾸고 있는 것은 우리와 마주앉아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조·미 대화가 열린다 해도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문제가 대화 의제에 오르기 전에는 핵 문제가 논의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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