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감나무 가지에 까치밥을 남겨 뒀던 선조들과 포도원의 열매를 남겨 고아와 과부, 나그네가 궁핍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던 믿음의 조상들은 ‘거둬들이지 않음(Unharvested)’의 가치를 실천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 거둬들인 뭔가가 있는 인생, 다 따지도 다 거두지도 않는 인생, 악착같이 다 챙기지 않는 인생, 이웃을 위해 조금씩 흘리며 산 인생들이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흘림을 통해 까치가 살고 이웃이 살아간다.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이 거룩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다고 약속하신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그래서 흘림은 축복인 것이다.
몇 해 전 경산중앙교회 갈릴리 청년부에서 가을 특별새벽부흥회 기간에 포장마차를 운영해 마련한 수익금을 교회에서 운영하는 NGO 경산월드휴먼브리지에 기부했다. 부서의 단기선교나 자체 장학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노숙인들의 방한복 구입을 위해서였다. 경산월드휴먼브리지는 방한복 패딩점퍼를 구입해 밤을 지내기 위해 지하철역에 찾아든 노숙인 50여명에게 전달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갓 결혼한 젊은 부부 한 쌍이 결혼 후 받은 첫 월급 전액을 기부했다. 그들의 기부로 파지를 줍거나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지역 내 홀몸노인 120여명을 위한 방한복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나눔에 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마음의 부자가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교회에 갓 등록한 한 새가족 성도는 한겨울에 교회 주차장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을 위해 방한복 30벌을 기부했다. 이처럼 흘림은 축복이 되고 계속 흘러 더 큰 축복이 됐다.
과거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 “한국교회는 한번도 교회 창문 밖을 내다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경산중앙교회는 ‘세상을 변혁하는’이라는 목회 비전이 있다. 경산월드휴먼브리지를 시작해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긴 나눔의 다리를 놓고 있다.
나눔의 다리를 놓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첫째, 나눔의 다리를 놓는 것은 장벽을 넘는 것이다. 경산중앙교회에는 아직 앳돼 보이는 젊은 엄마들이 영아부에 참석한다. 지역의 미혼모자 시설에 있는 엄마와 아이들이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려는 엄마들이 취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성도들은 아기를 돌보고 학습비와 멘토링을 지원하며 중보기도로 섬긴다. 제도권 밖에서 쉴 곳을 잃은 미혼모자들을 위한 쉼터 ‘엔젤맘 하우스’도 준비하고 있다.
섬김과 나눔은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네팔 지진 피해복구, 케냐 난민캠프 콜레라 예방 지원, 우물 파기, 모자 뜨기, 라오스 의료선교, 탈북청년 구출지원 등 지구촌 곳곳의 소외된 이들에게 장벽을 넘는 나눔의 다리를 놓고 있다.
둘째, 나눔의 다리를 놓는 것은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다. 경산에 전국에서 결식률이 가장 높은 학교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이 지역에 배고파 꿈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자’고 마음과 물질을 모았다. 그 결과 40여명의 아이들에게 학습비와 급식비를 지원하고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4월이 되면 취약계층의 산모들에게 모아사랑태교음악회를 열어 음악과 출산용품을 지원한다. 8년간 1000명이 넘는 취약계층 산모들의 정서적 물질적 필요를 채울 수 있었다. 6월 호국보훈의 달과 추석명절에는 사랑의 보따리를 만든다. 후원자들이 자녀들과 직접 구입한 물품을 보따리에 담아 홀로 계신 어르신들과 한부모가정 및 조손가정에 전달한다.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선 2013년 경산시의 인가를 받아 노인대학을 개교했다. 매년 250명, 연인원 17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즐겁고,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노인대학에 출석하는 분들은 기독교인이 30% 비기독교인 70%다. 종교를 떠나 지역사회의 곳곳에까지 나눔의 다리를 놓고 있다. 그리고 행복나눔 문화센터를 개설해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53개 강좌에 23명의 전문 강사를 세웠고 취약계층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 사랑의 쌀 나눔, 김장 나눔, 점심 나눔, 난방비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복음과 선행은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라는 두 가지 명령을 하나로 받은 사명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각자의 삶의 현장을 변화시킨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처럼 살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세상이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안 거둬들이는 흘림은 날마다 더하시는 축복으로 돌아온다. 다 거둬들이지 않은 흘림은 어느 순간 나를 향한 더 큰 축복으로 돌아오는 반향(反響, Ripple)이 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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