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대로 전자담배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달 23일 정부가 액상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강력 권고하고 편의점과 면세점에서의 퇴출이 확산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성급한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업계는 “액상 전자담배 사용으로 인한 중증 폐손상 발생은 미국의 특수상황인데 왜 우리 정부가 확실한 근거도 없이 앞서 나가 소비자 불안을 부채질하나” “더 유해한 일반 담배(궐련)는 놔두고 전자담배만 걸고 넘어진다”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일반 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소상공인이 대부분인 액상 전자담배업계의 위기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우선 보호해야 하는 정부로서 현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제적 조치였다는 생각이다.
미국 보건 당국 조사에 의하면 전자담배 액상에 마약인 대마 성분(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을 섞어 피운 게 중증 폐손상과 그로 인한 사망 발생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선 액상 대마 사용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그렇지만 일부 환자들은 니코틴만 함유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돼 액상에 들어간 다른 첨가물이나 향(香)을 내는 물질 등에 의한 폐손상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 액상 전자담배에 의한 중증 폐손상 국내 첫 의심 환자로 신고된 30대 남성도 일반 담배를 피워오다 3개월 전 니코틴 제품으로 바꿔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전자담배업계 주장처럼 미국 내 특수상황의 문제로 치부하며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는 것이다. 이미 캐나다 영국 등에서도 비슷한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국내 사용이 금지된 대마가 암암리에 액상 전자담배에 쓰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최근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이나 인터넷 직접구매 등을 통한 불법 반입 시도가 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국내 유통되는 액상 전자담배의 상당수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의 잎에서 추출한 니코틴만 담배로 규정하고 있는데, 시중엔 담배 줄기나 뿌리에서 뽑은 니코틴, 화학적으로 합성한 니코틴 제품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 담배처럼 쓰이면서도 담배가 아니어서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 이들 유사 전자담배 제품에는 어떤 화학물질이 어떤 방식으로 담겨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일반 담배에 비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연구도 충분치 않다. 전문가들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는 이런 법망을 빠져나가는 신종 담배를 규제하기 위해 담배 유해성분 제출 및 공개 의무화, 가향물질 첨가 금지 등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지만 통과는 물론 논의 자체가 잘 안되고 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사실상 담배산업 진흥을 위한 담배사업법과 충돌을 빚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담배 사업자에 대한 직접 규제는 기획재정부 소관 담배사업법으로 이뤄진다.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에 영향을 주는 신종 담배 제품 또는 담배 사업자를 규제하기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원화된 법체계는 금연 입법과 정책 추진 시 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해 왔다.
이 때문에 담배 및 니코틴 규제만을 목적으로 한 신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나 일본, EU, 캐나다, 호주 등 다수의 국가들이 담배 제조·허가는 경제부처, 담배 규제는 보건부 소관으로 하는 법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도 국민건강증진법 내 일부 분야로 존재하는 한계를 벗어나 담배 규제만을 목적으로 하는 복지부 소관 법률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발표된 액상 전자담배 관련 정부 대책에 ‘(가칭)담배제품 안전 및 규제에 관한 법률’ 제정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건 반가운 일이다. 복지부가 한계가 분명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이 아닌, 사실상 담배 규제법 추진 의지를 공식화한 건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새로 등장하는 신종 담배 이슈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입법 추진을 기대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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