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겨울을 지배하는 하늬바람

Է:2019-10-2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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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하늬바람의 계절이 왔다. 국어사전은 하늬바람을 서풍이라고 하는데 제주해녀박물관이 도표로 보여주는 해설은 북풍으로 돼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주 사람들은 겨울철 매섭게 몰아치는 북서풍을 하늬바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기예보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한랭한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겨울 동안 제주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불어오는 그 북서풍이다.

하늬바람은 심할 경우 바닷가에서는 초속 12~16m로 며칠씩 분다. 바다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배가 출항할 수 없다. 지난 3월 제주공항에 순간 최대풍속 27m의 바람이 분 적 있다. 2년 전 겨울 하늬바람이 최대풍속 25m로 불었다. 이튿날 뉴스는 제주에 태풍급 바람이 불었다고 전했다. 초속 17m가 넘으면 태풍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내년 3월까지 제주도는 이 하늬바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제주의 대부분 집에는 돌담이 높게 쳐져 있다. 일 년 중 겨울에 부는 이 하늬바람을 막기 위해서다. 돌담은 가슴 높이보다 높아 고개를 뽑고 봐야 안마당이 보일 정도다. 돌담은 제주도 가옥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절대적인 존재다. 모든 밭에도 돌담을 쌓는다. 밭담은 주택 돌담보다는 낮지만 이 돌담이 없으면 작물을 키울 수 없다.

제주도 전통가옥은 지붕이 낮다. 공연히 지붕을 높게 지으면 하늬바람에 어딘가 다친다. 부잣집은 지세가 낮은 곳에 집을 짓고 가난한 사람들이 언덕으로 올라갔다. 지붕 경사는 강풍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접시를 엎어놓은 정도로 완만하다. 지붕은 억새로 얹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그물만큼 촘촘하게 줄로 얽어맨다. 제주에는 벼농사가 없어 볏짚이 없다. 지붕은 가능한 낮아지고 돌담은 자꾸 높아져 지붕과 돌담이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곳도 흔히 볼 수 있다. 오죽하면 돌아가신 조상도 바람을 맞지 말라고 산소 주변에 돌담을 쌓는다.

제주에는 당근과 무가 주요 작물이다. 당근과 무는 늦가을에 파종해 이듬해 이른봄에 수확한다. 이 밭에 잡초를 뽑고 공기를 소통하도록 김을 매는데 제주말로는 ‘검질맨다’고 한다. 커다란 밭에 부녀자 7~8명이 고랑마다 일렬로 앉아 한 방향으로 검질매 나가다 끝까지 가면 다 같이 일어나 엉덩이 방석을 그대로 맨 채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 이르러 새 고랑에 앉아 다시 검질을 시작한다. 하늬바람을 등지려는 것이다. 바람을 피해 줄기를 뻗다 보니 한쪽 방향으로만 자라는 편향수도 하늬바람이 만든 것이다.

올레길은 여름, 겨울 가릴 것 없이 걷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 하늬바람이 부는 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사람은 바람을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간간이 방목하는 말이 보인다. 이들은 반드시 꼬리를 바람 불어오는 북서쪽에 두고 머리를 동남쪽에 둔다. 그때쯤 함덕, 김녕, 곽지 등 제주도 해수욕장은 모래가 날아가지 않도록 천을 덮는다. 그래도 바람에 날린 모래가 주변 도로에 깊게 쌓인다. 사구는 이렇게 쌓인 모래가 만든 언덕이다.

삼다도라고 하는 제주의 바람은 바로 이 하늬바람을 말한다. 겨울 내내 세차게 불어대는 하늬바람을 처음 만나본 사람이라면 제주가 바람이 많다고 아니할 수 없다. 바닷가라면 더 그렇다. 외지인이 이주해 적응하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늬바람이다. 이름은 하늬라고 예쁘게 지었는데 실체는 매섭다. 탤런트 이하늬는 예쁘기만 한데.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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