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인 1일 고등학생이 경찰의 총탄에 가슴을 맞아 중상을 입으면서 홍콩 시위가 더욱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이 홍콩 사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콩 시위대는 “피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격앙돼 있고, 미국 정치권에선 중국을 “현대판 마오쩌둥 시대”라고 비판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도 확산되고 있다.
2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취안완 지역에서 18세인 고교 2학년 청즈젠이 쇠막대를 휘두르다 경찰이 쏜 실탄에 가슴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 지난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 시작 후 경찰의 실탄에 시민이 부상을 입기는 처음이다. 청즈젠은 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돼 몸에 박힌 탄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병원 측은 “환자가 수술을 받고 안정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에는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청즈젠이 쇠막대를 휘두르자 경찰관이 돌아서면서 그의 가슴을 향해 권총을 쏘는 모습이 담겼다. 총구와 청즈젠의 거리는 불과 30㎝ 남짓이었다.
실탄을 맞은 청즈젠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치다 쓰러졌고 “가슴이 많이 아프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시위대 1명이 청즈젠을 돕기 위해 다가가자 걷어차 넘어뜨린 뒤 제압했고, 청즈젠에게 즉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청즈젠은 왼쪽 폐 부위 2곳에 총알 파편이 박혔으나 다행히 심장을 3㎝ 정도 비켜갔다.
홍콩 경찰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스티븐 로 홍콩 경찰청장은 “실탄 발사는 자신과 동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관의 합법적인 정당방위였다”며 “총탄을 맞은 학생도 쇠파이프로 경찰을 위협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시위대가 이를 무시해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180명 이상이 경찰에 체포됐고 시위 부상자도 74명이나 됐다. 경찰은 총 6발의 실탄을 발사했고, 경찰 부상자도 25명으로 집계됐다. 홍콩 지하철 전체 91개 역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곳이 폐쇄됐다.
홍콩 시위대는 실탄 피격에 대해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격분하고 있다.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던 조슈아 웡은 “홍콩은 이제 사실상 경찰국가가 됐다”고 비난했다. 범민주 진영 의원 24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정당방위가 아니라 공격 행위”라고 지적했다.
홍콩 중·고등학생 단체들은 긴급 동맹휴학을 학생들에게 호소했다. 청즈젠이 재학 중인 호췬위 중등학교 재학생과 시민 400여명은 이날 학교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였다.
국제사회의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신중국 건국 70주년에 기본적인 자유를 지키려는 홍콩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다니 암담하다”며 “시진핑의 중국은 온갖 통제 수단을 동원하는 현대판 마오쩌둥 시대”라고 비난했다.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건국 70주년 축전을 보낸 데 대해 “지극히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경찰의 실탄 사용은 적절치 않으며,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홍콩 경찰의 자제를 요구했다. 유럽연합(EU)도 “경찰의 실탄 사용은 금지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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