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 성지골. 대구 달성군 현풍읍과 경계를 이루는 이곳은 완연한 봄이었다. 군데군데 심어진 벚나무엔 벚꽃이 만개했다. 성지골은 야트막한 산길이 이어진 끝자락에 있었다. 풍경은 여느 시골과는 사뭇 달랐다. 낡은 시골집이나 소똥 냄새, 진흙으로 바른 담벼락은 보이지 않았고 띄엄띄엄 눈에 띄는 흰색 집들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다.
성지골 입구에 들어서자 아담한 교회당이 나왔다. 주민교회(정석중 목사)다. 교회당 건물 위로 흰색 십자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했다. 예배당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시골에도 계신 여호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담임 정석중(55) 목사가 다가왔다. 생활한복을 입은 그는 “이 옷이 참 편해요”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닭 모이 좀 줄게요” 했다. 6.6㎡(2평) 남짓한 닭장엔 10여마리의 닭들이 있었다. 횃대에 올라 밥을 기다리던 닭들은 인기척이 나자 푸드덕거렸다. 정 목사는 “목말랐지” 하며 닭들에게 물부터 줬고 바가지로 모이를 퍼 날랐다. 정 목사는 닭들이 방금 낳은 달걀을 줍더니 “오랜만에 날달걀 드실래요” 하며 권했다. 그는 닭장 옆에 놓여있던 녹슨 낫으로 달걀 양쪽을 톡톡 치며 구멍을 내줬다.
정 목사의 이런 모습은 목회자라기보다는 시골에 오래 살아온 아저씨 같았다. 실제로 그가 목회하는 주민교회는 마을과 주민의 교회였다. 지역민들과 따로 떨어진 교회가 아니라 지역민들 속에 들어갔다.
정 목사는 1993년 6월 성지골 옆 마을인 대합면 도개리의 폐가를 임대해 교회를 시작했다. 교회가 없는 무교회 지역을 알아보다가 찾은 곳으로, 거기서 13년을 목회했다. 이후 2007년 성지골에 교회당을 건축하며 제2기 사역을 시작했다. 때마침 그의 가족들이 근처로 이사를 왔고 둘째 형은 교회 옆에 펜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민교회도 게스트하우스가 딸린 선교관을 그즈음 건축했다.
정 목사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쉴 수 있는 교회가 되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2007년엔 수도시설도 없던 곳이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산골 마을’에서 ‘전원 마을’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펜션을 운영하는 형님의 공간을 하나씩 활용하기 시작했다. 펜션 앞으로 펼쳐진 탁 트인 공간에서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70~80년대 교회 ‘문학의 밤’ 경험을 토대로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을 초청해 공연을 열었다. 2017년 9월에는 찬양 콘서트를 개최해 전용대 목사와 가수 이재영, 이준석 선교사 등이 합동으로 공연을 했다. 충주오케스트라도 교회로 찾아와 공연했다.
정 목사는 “행사 때마다 성도뿐 아니라 지역민들을 모셨는데 한번 와본 분들이 소문을 내면서 행사를 자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교회는 하우스 콘서트를 비롯해 지역교회나 기독 단체들의 ‘번개 모임’ 장소로도 자주 활용된다.
그는 “교회가 신자와 비신자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이 됐다”며 “창녕에 우포늪이 있어서 문화예술인, 환경운동가들과도 자주 교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회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수련회 장소로도 사용되는 등 ‘시골 교회’를 넘어 창녕과 경남의 주요 교회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소속인 이 교회는 해외선교에도 열심이다. 성도들이 해외선교지에 직접 나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선교사를 돕는 데는 앞장선다. 여기엔 교회의 간증이 있다. 주민교회도 개척 초기 도시 교회의 후원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 무렵 정 목사가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했다가 한 여성 선교사로부터 “작은 교회의 헌금 1만원과 기도도 선교사에겐 큰 도움”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1만원 선교’였다.
교회는 이후 외부에서 들어오는 후원비를 쪼개 1만원씩 열 군데 선교지를 후원했다. 점차 선교지가 늘어 30곳이 됐고 선교비도 2~3만원씩 보내게 됐다.
정 목사는 “신기하게도 1만원 선교를 시작하면서 교회 재정도 안정됐다”고 했다. 현재 교회가 돕고 있는 나라는 카보베르데, 감비아, 캄보디아 등 총 10개국이다. 이들 국가에서 사역하는 협력 선교사들은 안식년을 맞으면 주민교회를 방문해 선교관에서 머물며 쉼을 누린다.
정 목사는 “작은 시골교회가 북적거리면서 안식과 평화의 장소로 변하자 성도들도 자긍심이 생겼다. 교회 재정이 마땅한 곳에 쓰인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지역민들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민교회는 때때로 전 교인이 다른 시골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지난달 24일엔 합천 오두막공동체(이재영 장로)를 방문해 예배를 드렸다. 오두막공동체 회원들이 지난 설 명절에 주민교회를 찾은 데 대한 답방 차원이었다. 오두막공동체는 알코올중독자나 지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다.
정 목사는 “교단을 넘어 다양한 지역교회 등과 연합하면서 성도들의 신앙 인식도 확장되고 있다”며 “성지골은 한문으로 ‘성지(聖地)’라 쓴다. 마을 주변을 돌아보면 ‘성지순례’가 된다. 언제든 누구든 환영한다”고 말했다.
창녕=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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