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청룡’, 막힌 골문 길 4분 만에 뚫다

한국 축구의 아시안컵 도전사에서 손쉬운 첫 상대는 거의 없었다. 7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6위 필리핀과의 대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59년 만의 우승 기대와 첫 경기라는 부담감, 층층이 쌓은 밀집 수비에 길을 잃을 뻔했던 한국은 황의조(27)의 골로 승점 3점을 얻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찾은 이는 돌아온 ‘블루 드래곤’ 이청용(31)이었다.

한국은 지난 13번의 아시안컵 본선 첫 경기에서 4승 8무 1패를 기록했다. 승리를 기록한 4번의 대회 중 2골 차 이상 손쉽게 이긴 대회는 1960년 베트남에 5대 1로 이긴 게 유일했다. 물론 필리핀은 아시안컵 본선에 첫 출전했고, 약체로 꼽히는 팀이어서 단순 비교가 힘들 수 있지만 첫 경기에서 고전했던 징크스를 되풀이했다.

필리핀은 5-4-1 포메이션으로 수비를 두껍게 가져가면서 한국의 공격을 번번이 차단했다. 한국은 점유율에서 82%대 18%로 상대를 압도하고도 마무리가 힘겨웠다. 황의조, 구자철(30), 황희찬(23), 이재성(27)으로 구성된 선발 공격진은 수비벽에 막혀 결정적 기회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풀백 이용(33), 김진수(27)는 자주 흐름이 끊겼다. 황의조가 몇 차례 터닝슛으로 골문을 위협했지만 골키퍼 선방 등에 막혔다. 예상 밖으로 필리핀의 역습도 날카로워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순간도 몇 차례 있었다.

답답했던 무득점 행진은 후반 18분 큰 대회 경험이 많은 노장 이청용 투입 이후 깨졌다. 이청용은 후반 22분 오른쪽 페널티지역 밖에서 오른발로 툭 찔러주는 패스로 황희찬에게 볼을 넘겨줘 황의조의 결승골을 합작했다. 몰려 있던 상대 수비를 허물어 황희찬이 황의조에게 어시스트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다. 황의조의 결정력이 컸지만 상대 수비벽에 균열을 내는 이청용의 순간적인 판단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장면이었다.

이청용은 필리핀과의 경기 포함 82경기의 A매치를 소화한 베테랑이다. 현 대표팀 내에선 기성용(30·109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A매치 경험이 많고, 나이로는 이용과 김진현(32)에 이어 세 번째다. ‘양박쌍용’의 한 축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2골을 기록해 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에도 모두 출전했다. 아시안컵에는 2011년 카타르 대회부터 출전해 3·4위전까지 6경기에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2015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선 대표로 뽑혔으나 첫 경기 오만전에서 부상을 당해 조기 귀국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소속팀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며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누락되기도 했다. 독일에서 새 둥지를 튼 이청용은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로 대표팀이 재편된 후인 지난해 11월 호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 출전하며 부활 가능성을 높였다. 평가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번 아시안컵 대표팀에도 최종 승선했다. 필리핀전에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해 다음 경기에서 중용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청용은 필리핀전 이후 한국 언론과 만나 “전반에 상대가 많이 뛸 것으로 예상해 조급해하지 않았다”며 “후반에 볼 점유율을 높이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표팀은 승점 3점 확보에 성공했지만 적잖은 과제도 떠안았다. 먼저 이용, 정우영(30), 김진수(27)가 경고를 받아 수비에 부담이 생겼다. 이번 대회에선 8강전까지 경고가 누적된다. 따라서 세 선수가 8강전까지 경고를 1장 더 받으면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기성용의 오른쪽 허벅지 부상도 변수다. 부상 정도가 경미해 일주일 정도 안정과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조별리그 출전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이란은 8일 메흐디 타레미의 2골을 앞세워 5대 0 대승을 거뒀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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