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들에게 ‘교장선생님’이란 존재는 여전히 엄격하고 권위적인 상급관리자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제프리 안 베일러국제학교 교장은 그 직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33세의 젊은 나이여서만이 아니다. 그가 학교에 심고 뿌리내린 확고한 교육철학 덕분이다.
안 교장은 “기독교인이 설립하고 기독교 교재로 수업하는 게 기독교학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이 이뤄지는 모든 순간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함양해가는 과정이어야만 지식(knowledge)을 넘어 지혜(wisdom)를 갖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한 공감능력과 실천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베일러국제학교는 미국 기독교 사립 초중고 교과과정을 기반으로 독자 개발한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한번 정립한 커리큘럼에 머무르지 않고 우수한 교육과정을 연구해 거듭 발전시켜 나간다. 미국 텍사스주립대(UT Austin)의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도입해 학생이 스스로 주도하는 프로젝트형 교육과정을 진행하기도 하고 하버드교육대학원의 글로벌 리더십 교육과정을 ‘월드 코스(World course)’ 수업에 적용하기도 한다.
이들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이 공감능력을 갖추고 학교에서 얻은 지혜를 삶에서 실천해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관계’다. 수학 영어 과학을 열심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국제 이슈와 연결시켜 관계를 만들어 간다.
“모든 학생들이 3월에 미국 인도 필리핀 아이티 등으로 단기선교여행을 갑니다. 과학 프로젝트팀에 속한 학생들의 경우 태양열 정수필터를 만들어 물이 부족한 마을 주민들을 돕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저마다의 세계관에 ‘나눔을 통한 관계 형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모습이죠.”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관계를 확대해나가는 활동은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일상화 돼 있다. 교장선생님도 예외일 수 없다.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안 교장은 매일 방과후수업이 진행되는 오후 시간이면 각 교실을 돌며 학생들의 표정을 살핀다. 수업 후엔 함께 운동을 하며 교제를 나눈다. 늘 문이 열려 있는 교장실은 학생들이 안 교장에게 문턱 없이 고민을 나누고 제안을 전하는 사랑방이다. 그는 “수요일마다 학년별로 학생들이 원하는 메뉴를 정해, 학교 밖에서 식사 교제를 하는데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며 웃었다.
졸업생들은 전원 UC버클리 카네기멜론대 뉴욕대 조지워싱턴대 등 미국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 개교 1년 만에 거둔 놀랄만한 성과지만 안 교장은 시끌벅적한 자축 대신 학생들의 마음에 ‘한걸음 더’를 심어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명문대 입학에 안주하지 않고 학교에서 배운 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전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게 ‘베일러 정신’이자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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