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아리서 출발… 現 멤버 8명
故 김범석 소방관 사연 듣고 감명 “公傷 인정 못받는 소방관 돕자”
폐소방복 수거해 세탁·분해…직접 디자인한 가방으로 재탄생
판매 수익금 모아 소방관에게 기부, 소방 현실 알리는 토크콘서트도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소셜벤처 ‘레오(REO·Rescue Each Other)’의 이름에 담긴 메시지다. 레오는 폐소방복을 이용한 상품을 제작하고 그 수익으로 공무상 요양(공상)을 인정받지 못한 소방관들을 돕는 스타트업이다. 소방관들이 시민을 지키듯 반대로 어려움에 빠진 소방관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대학교 동아리 프로젝트로 시작해 2년 만에 법인으로 성장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소방관들의 ‘진짜 현실’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6일 건국대학교 창업 지원 공간 ‘스타트업 그라운드’에서 레오의 이승우(25) 대표를 만났다.
레오는 건국대 사회적기업 동아리 ‘인액터스’에서 시작됐다. 소방관 처우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2016년 7월 이 대표를 포함한 인액터스 멤버 3명이 “소방관을 돕는 프로젝트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지금은 멤버가 8명으로 늘었고 소방관 토크콘서트 등 문화행사까지 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사업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쉽게 풀린 게 하나도 없었다”며 웃었다. 그만큼 모든 과정이 ‘맨땅에 헤딩’이었다.
“일단 소방관을 만나는 것부터 쉽지 않았어요. 얘기를 들어보고 어떤 기부를 할지 정하려 했는데 무작정 찾아가는 데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나중엔 국민신문고까지 글을 올려서 겨우 인터뷰가 성사됐죠.”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들에게 소방관은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그런데 일선 소방관들에게 고(故) 김범석 소방관의 사연을 전해 듣고 ‘영웅’의 현실이 깊이 와 닿았다. 2014년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 소방관은 8년간 화재·구조 현장을 누비다 혈관육종암 판정을 받고 7개월 만에 눈을 감았다. 유가족은 공무상 사망을 인정해 달라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순직유족보상을 청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이어진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질병과 공무 수행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공무 중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을 치료할 때 공상 승인을 받아야 치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어 공상 승인을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소방관은 사고 위험이 높고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지만 일반 공무원과 똑같은 조건에서 심사받아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대표는 “공상을 승인 받지 못하면 일반인이 다치거나 사망한 것과 같아 천문학적인 치료비와 생활비를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며 “소방관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오는 3년이 지나면 폐기되는 소방복을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한다. 국내에서 소방복으로 제품을 만드는 업체는 레오가 최초다. 지자체 소방서에서 폐소방복을 수거하면 2중 물세탁을 거친다. 이후 실밥을 뜯어 분해한 뒤 가방이나 파우치 등으로 재탄생시킨다. 디자인은 레오 팀원들이 직접 한다. 창고와 사무실은 모두 교내 공용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정이 자리 잡기까지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음 만져보는 소방복은 재질부터 낯설었다. 내열성이 뛰어난 ‘메타 아라미드’ 섬유인데 가위로 쉽게 잘리지도 않고, 염색도 되지 않았다. 드라이클리닝을 하자 촉감이 변했다. 전문 업체에 도움을 구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소재는 처음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대표는 “초기 8∼9개월간은 상품 디자인만 했다”며 “실밥이 지나간 자리는 활용할 수 없어 소방복 한 벌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가방 고리 등 부속재료 하나도 동대문시장을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구한 ‘발품’의 결과라고 덧붙였다.
레오는 지난해 4월과 11월에 이어 지난 3일 세 번째 펀딩을 시작했다. 순수익금의 50%는 공상을 인정받지 못한 소방관의 소송비 등으로 쓰인다. 6일 현재 레오가 공상 불승인 소방관이나 그 유족에게 전달한 금액은 1100여만원. 재향소방동호회나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을 통해 소방관을 소개받아 직접 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국제소방관의 날을 맞아 고 김범석 소방관의 사연을 알리는 전시회와 실제 소방관들이 참여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이 대표는 “기부도 의미가 있지만 소방관들의 진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 문화행사까지 열게 됐다”고 말했다. 3차 펀딩을 마친 뒤엔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매장에 입점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제품도 연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세종소방서의 의뢰를 받아 산소마스크 10개를 넣을 수 있는 폐소방복 가방을 만들어 납품했다. 이 대표는 “폐소방복이 방염성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일반 천보다는 훨씬 불에 강하다”며 “로프 가방처럼 소방현장에 쓰는 천 소재의 제품을 폐소방복으로 만들면 더 유용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레오 팀원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학생이다. 시험기간이 겹치면 낮에 공부하고 밤에 소방복을 분해하며 하루를 보냈다. 취업 걱정도 떨치기 어렵다. 이 대표 역시 처음엔 ‘1년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소방관분들은 변한 게 없어서 (사업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1년이 지나 돌아보니 그분들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도움을 드렸다고 하지만 돈을 드리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저는 레오를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얻었는데, 소방관들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게 더 힘들었죠.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된 원동력인 것 같아요.”
지난해 9월 소방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최근 5년간 암에 걸린 소방관은 151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6일 현재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의 도움을 받아 공상 불승인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소방관은 15명 정도에 불과하다. 소송보다 치료가 급한 경우, 생활고에 시달려 비용을 대지 못하는 경우, 당사자가 사망해 유족이 근무일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등 사정은 다양하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위험직무 종사 공무원에 대한 공상 추정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소방관처럼 재난·재해 현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구호·수습 업무에 종사한 공무원이 중증·희귀질병에 걸릴 경우 이를 공무상 질병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김범석 소방관의 유족은 다음 달 20일 고등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대표는 “김 소방관은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방관으로 기억되고 싶으니 소송을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며 “김 소방관처럼 발병 원인이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희소질환은 입증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소방관 공상 불승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보다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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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119 영웅 위해 폐소방복으로 가방 제작” 소셜벤처 ‘레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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